스위스 디자인 여행/박우혁 지음/안그라픽스 펴냄
서로 다른 여행지에서 다른 여행기를 본다. 책을 지니고 다니다 그것에 대한 사랑을 쓴다. 책이란 나른한 권태를 '아름답게 사는' 일로 치환해준다.
이미 눈뜨니 낯선 곳이다. 곧 팔월, 장마는 끝나고 폭염이 염치없이 호들갑을 떨 것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통속한 사람(?)이 되는 계절이 왔다. 지상의 삶을 경험하러 익명을 빙자해 이리저리 혹은 이 나라 저 나라를 속절없이 흘러 다닌다. 여행은 '딱 한 권의 책'과 시간을 놓고 그것을 탕진하고 다니면 그뿐,
'스위스 디자인 여행'은 노란색 여행기다. 아름답게 '보는' 일을 아름답게 '사는' 일로 바꾸어 놓는다. 젊은 예술가의 눈으로 본, 일테면 타이포그래픽에 대한 책이다.
심플한 타이틀 로고와 노란색 위에 스위스의 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표지는 마치 구름 속을 이내 헤집고 다니게 한다. 표지의 날개를 열면 그 안쪽으로 짙은 붉은색과 십자가 무늬를 배경으로 스위스 지도가 그려져 있다. 목차 뒤, 하얗고 파란 구름은 "바람이 불었다. 길을 떠났다. 가슴은 두근거렸다."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이제 작가는 글로, 사진으로, 평범한 그러나 달콤하고 쌉싸름한 진짜 스위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90쪽의 텍스트는 두툼하지만 한두 시간이면 족히 읽는다.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는 자신이 보고 체득한 글꼴에 대해 말한다. 대학 강의를 들을 때도, 친구들과 스위스 유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때에도 글씨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디자인의 성지들과 타이포그래픽 작품들, 네 가지 언어로 쓴 스위스의 화폐와, 놀라울 만큼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여권과 쓰레기 봉투에서부터, 거리 표지판의 정리된 그리드까지 심심한 도시 구석구석을 재미있게 살핀다.
또한 빨간 십자가로 카니발을 온통 채운 거리와 공공의 디자인은 스위스 디자인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실감케 한다.
우리의 환경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추가해도 좋다. 이 책이 한 달을 들춰도 싫증이 나지 않는 까닭은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허물처럼 내 몸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색을 지닌 예쁜 책 속에 어느 시인의 시구를 인용해 초록해 둔다. "나도 크면, 서럽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세상 사람들을 울리리라."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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