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엽제 고통은 아직도 계속…

30년 투병생활하다 生 마감

#30일 대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 30년 가까이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고통의 삶을 보내다 숨진 C씨(61)의 영정 앞에서 유족들은 눈물조차 마른 듯했다. 그들은 그토록 힘들어하다가 허망하게 떠나간 그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었다.

37년 전인 1970년, 육군 맹호부대 부대원(병장 제대)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던 그는 29일 숨지기 직전까지 고엽제 '이상징후'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C씨의 아내(56)는 "제대하고 10년 후 갑자기 쓰러진 뒤 원인도 모른 채 집 안에서 여생을 보냈다."며 "고엽제로 인한 병인 것을 7년 전에 알았고, 그제야 보훈청에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로 등록해 월 20여만 원씩 지원받았지만 되돌리긴 이미 늦었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C씨 가족은 그동안의 고통을 얘기하며 통곡했다. 지능이 점점 떨어진 5, 6년 전부터 C씨는 집 밖에만 나가면 길을 잃고 며칠간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굴과 가슴, 팔다리의 피부가 벗겨졌고 기억까지 잃기 시작했다. 고혈압이 찾아왔지만 입원도 수술도 할 수 없었고, 결국 C씨는 31일 영천 호국원에 묻히게 됐다.

#1967년 제100군수사령부(십자성부대)에 자원 입대한 뒤 베트남에 파병된 Y씨(62)도 고엽제 후유의증에 따른 온갖 질병으로 지금까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69년 귀국한 그는 10년 뒤 고혈압과 당뇨를 앓게 됐고,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엔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올 초에는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돼 또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최근엔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파병된 우리가 입은 상처는 말로 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고엽제의 악몽은 Y씨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큰아들(34)이 자신 때문에 선천성 청각장애(2급)인으로 살게 됐고 결혼도 실패했다. Y씨는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는 사망과 동시에 정부 지원이 끊기고 국가유공자도 될 수 없다."며 "나야 호국원에 묻히면 끝나지만 자식은 나 때문에 더욱 큰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30년도 더 흘렀지만 고엽제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명목 아래 조국을 위해 피땀 흘렸던 파월장병의 일부는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고엽제 질병으로 14가지(비호지킨임파선암, 연조직육종암, 염소성여드름, 말초신경병,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호지킨병, 폐암, 후두암, 기관암, 다발성골수종, 전립선암, 버거병, 당뇨병, 만성림프성백혈병)를 지정, 사망원인이 이 중에 포함돼야만 유족연금 등 전몰군경으로서의 혜택을 주고 있다. 고혈압, 뇌출혈, 중추신경장애 등 20가지의 '후유의증'은 파월장병이 살아있을 동안에만 정부 지원금(월 27만 7천~57만 2천 원)을 지급할 뿐이다.

대구보훈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등록된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3천218명, 후유의증 환자는 7천710명 정도. 보훈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고엽제 주성분인 다이옥신으로 인한 암이 직접 사인이 돼야만 전몰군경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까지 국가유공자로 등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차정득 고엽제 후유의증 권리찾기 추진위원회 대외협력팀장은 "고엽제로 인해 20, 30년간 투병생활에다 마땅한 직장을 갖지도 못하고 가정파탄이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후유의증 환자가 장애인이나 노인수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부 지원으로 살다가 생을 끝내는 일이 없도록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