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전(古典)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고전이 가치를 잃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문제의 정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고전은 우리가 고민하는 삶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 논술이 문제의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인식의 틀을 찾아내는 시험이라는 점에서 고전의 가치는 분명해진다고 하겠다. 최근 대입 논술에서 동양, 특히 우리나라 옛 사상가들의 고전이 단골로 출제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배워라, 백성을 위해! 박제가의 북학의(김교빈 글/삼성출판사 펴냄)'는 중1부터 고1까지라는 부제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학의'의 원문을 빠짐없이 번역한 역주서나 에세이가 아니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있게 박제가의 사상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박제가는 서자로 태어났지만 시대를 앞선 생각을 가지고 청나라는 물론 세계와 교류할 것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북학의는 그가 청나라를 견학하고 쓴 일종의 선진국 리포트다. '북학의'의 문제 의식은 '나라가 가난하다.'는 단 한마디로 축약된다. 조선은 왜 가난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바로 이 질문과 그 대안이다.
박제가는 단도직입적이다. 그는 북학의를 통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정신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나라를 가난에서 구해낼 방법은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도구가 수레요, 선박이다. 그는 수레와 선박을 이용해 중국의 문명과 정보를 입수하려고 했다. 경제를 우물에 비유하면서 자꾸 퍼내 쓰면 새로운 물이 늘 가득하지만 버려두면 말라버린다는 주장은 오늘날 소비가 미덕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소비가 촉진됨에 따라 그에 부응해 생산이 증가하고 생산 기술의 혁신이 이뤄져 전체적으로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박제가의 사상은 비판의 여지도 많다. 박제가의 문명론은 주체(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처럼 가치판단을 배제한 기술 위주의 문명론은 강대국은 무조건 옳다는 식의 위험한 결론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진정 백성들을 위하는 길인지를 알고 실천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한미 FTA협상, 영어 공용화 논쟁 등에 휩싸여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들을 던져 준다.
◇ 생각해보기
▶ 박제가는 200여 년 전 중국을 네 번이나 다녀왔다. 북학의에는 조선을 걱정하는 박제가의 마음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풍속(風俗)을 바꾸지 않으면 하루 아침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런 조선의 가난이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을까.
▶ 박제가의 사상은 근대 자본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소비가 부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그의 사상과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유사점을 찾아보고, 왜 이런 주장들이 당시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는지 생각해보자.
▶ 북학의는 중국 문물을 소개한 후 우리 것을 비판하고 중국 문화를 도입했을 때의 이로움을 강조하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술이 뛰어나고 부국하기 때문에 청나라와 통상을 열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한미 FTA, 영어 공용화, 세계화에 대한 최근의 논쟁과 관련 지어 이러한 방식이 빠질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생각해보자.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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