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틴에서 식사를 했다. 이 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 중 하나다. 우리는 리오자(와인)를 곁들여 구운 애저요리를 먹었다."
작가 헤밍웨이는 그의 저서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년)'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이 한 구절이 레스토랑 보틴을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로 만들었다.
지난 달 헤밍웨이가 그의 문학 작품을 통해 세상에 알린 레스토랑 보틴을 찾았다. 보틴은 스페인 마드리드시 마요르 광장에서 벗어나와 외곽 골목에 자리해 있었다. 이 곳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곳이다. 화가 고야가 무명시절 접시닦이로 세월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밤 9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4층 레스토랑은 빈자리 없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손님들이 입구에 늘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이 레스토랑을 그토록 장수하며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만들었을까.
레스토랑 보틴이 위치한 건물은 1590년에 지어졌고 레스토랑은 1725년에 개업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창업자인 프랑스인 장 보틴의 이름을 딴 것. 하지만 장 보틴은 사후 후손이 없어 부인의 조카에게 레스토랑을 물려줬다. 식당 입구에 'sobrino de botin(nephew of botin·보틴의 조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레스토랑 보틴은 19세기 말 당시 이 식당의 주방장이던 에밀리오 곤잘레스가에 인수됐다. 우리 같으면 식당을 인수하면 상호부터 갈았을 터. 하지만 에밀리오가 식당을 인수하면서도 보틴의 이름과 요리법을 전승한 것이 오늘날 가장 오랜 레스토랑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 이유다.
현재 이 식당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총지배인 안토니오 곤잘레스씨는 주방장이던 에밀리오 곤잘레스씨의 3세.
안토니오씨는 장수 비결을 묻자 대뜸 보틴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에 대한 사랑, 그리고 최고의 원재료 등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안토니오씨가 안내한 곳은 주방. 레스토랑 1층에 자리한 주방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높이 2m가량의 커다란 화로가 눈에 띈다. 이 화로는 다름 아닌 이 집의 명물 코치닐로(애저)를 구워내는 오븐이다. 안토니오씨는 레스토랑 개업 당시 설치돼 지금까지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븐을 덥히고 애저를 굽는 데는 참나무만을 사용한다. 이는 수백 년을 이어온 또 다른 전통이다. 애저 또한 마찬가지다. 애저는 아직까지 어미 젖 이외에는 다른 어떤 먹이도 먹어보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3kg미만의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된 새끼다. 어미 돼지에게는 호밀과 귀리, 양상추와 감자 등 야채만을 먹이로 제공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2층으로 안내된 후 헤밍웨이가 즐겨 먹었다는 코치닐로를 주문했다. 10여 분 후 요리가 나왔다. 껍질이 마치 왁스를 칠한 듯 반들거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왁스가 아닌 속살에서 배어 나온 습기다. 껍질과 속살을 잘라 한 점 베어 물었다. 노릇하게 익은 껍질은 파삭하니 마치 비스킷 같다. 잘 익었으면서도 물기를 머금은 속살은 부드럽기 그지 없다. 소스는 약간의 마늘 소스를 사용한 듯하다. 취향이야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위기에 취한 관광객이 색다른 한 끼를 취하기에는 그만이다.
이 곳에는 1~4층에 모두 55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안토니오씨는 하루 평균 500명 정도가 이곳에서 식사를 즐긴다고 했다. 처음에는 1층만이 레스토랑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유명세를 타면서 전 층이 식당이 됐다. 전통을 간직하고 첫 맛의 비결을 수백 년에 걸쳐 그대로 지켜내면서 보틴은 300년 역사를 쓰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 총지배인 안토니오 곤잘레스
"우리 식당은 여행으로 허기에 지친 손님들의 배를 채우는 곳일 뿐 아니라 마음을 채워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레스토랑 보틴의 총지배인 안토니오 곤잘레스씨는 이 식당이 이렇게 오래도록 장수하는 비결에 대해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식당을 찾았을 때 편안히 그 식당의 오랜 전통을 느끼고 마음에 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큰 자산이라는 것이다.
안토니오씨는 "입맛은 나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맛에 대한 평가는 상반될 수 있다. 하지만 식당의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300년 가까이 이어온 레스토랑의 전통에 대한 자긍심이 배어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식당에서는 280여 년 전 개업 당시 사용하던 오븐이 아직도 이 집의 주 메뉴인 애저를 쉴 새 없이 토해낸다. 손때 묻은 가구들은 그대로 이 식당의 장식품이 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수백 년 세월에 반질반질해졌지만 그 자체가 볼거리다. 이 모든 것들이 전통이 됐다.
"한국인요? 우리 식당에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나라별로 손님을 집계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 식당을 찾는 한국인들이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곤잘레스씨는 "한때 한국에서 분점을 내기 위해 찾아 온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는 '전통'이 걸림돌이 됐다.
곤잘레스씨는 "레스토랑은 수명이 대단히 짧은 사업입니다. 퓨전이다 뭐다 해서 분점을 내게 되면 그 지역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레스토랑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다보면 고유의 맛을 잃고 전통도 잃게 된다는 것이 안토니오씨의 생각이다.
"레스토랑 보틴은 수백년 쌓아온 전통을 바탕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은 맛을 유지하며 300년 역사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이재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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