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학력은 깨끗합니까?'
우리 사회의 지도층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력검증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신정아 씨와 김옥랑 씨에 이어 학계로 불똥이 튀고 있고 검찰까지 나서서 외국의 미인가대학을 졸업한 대학교수들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전 직원에 대한 학력조회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학력보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졸도백'이었던 김수학 전 경북지사는 내무부 지방국장에서 충남지사로 부임하면서 '국졸도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에게도 학력은 거추장스러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그는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은 시장통에서 배웠다."며 자신의 학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평생을 한복 짓는 일과 양복 만드는 일로 살아온 두 사람의 '명인'을 만났다. 이들은 학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력이라는 것을 몸소 겪고 실천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 배워나갔죠"
50년째 한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김복연(74) 씨를 대구시 중구 대봉동의 김복연한복연구원에서 만났다. 대뜸 '여자가 바느질 솜씨가 좋으면 팔자가 사나워 못산다.'며 어른들이 바느질을 못하게 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래도 타고난 재주를 감추지는 못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았고 '바느질바치'라는 침모의 바느질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대식구라서 늘 저녁에는 바느질거리가 한소쿠리였다. 그렇게 배운 바느질 솜씨였다.
스무 살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대구로 이사를 나왔고 아버지가 차려준 쌀집이 망해서 스물세 살 때부터 대문앞에 '한복합니다'란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한복을 시작했다. 그때는 한복을 지을 때 포목전에서 천을 사다가 주변에 솜씨좋은 집에 맡겼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50년이 넘었다.
"못 배운 것에 대해 한은 있지요. 그러나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복에 대해서도)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성균관대와 단국대에서 개설한 한복과정에서 3년을 배웠어요."
김 씨는 평생을 지어 온 한복 솜씨에 그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갖췄다. '장인'의 자격을 다 갖춘 셈이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명장' 신청을 냈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최초로 한복분야의 명장을 받았다. 성주초등학교를 나온 것이 학력의 전부지만 명장은 학력과 무관했다.
"겸손한 마음을 보이고 후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후배양성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꾸준히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요. 1, 2년 가르쳐주면 스스로도 깨우쳐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신 며느리와 손녀가 김 씨의 대를 잇고 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의 일이 너무 힘들어보여 배우지않겠다던 며느리가 20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어릴 적부터 바느질 솜씨가 좋은 손녀도 적극적이다.
"배워야 합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명장이라고 '내가 최고'라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견문입니다."
◆오직 실력으로 세계 최고
'베르가모 김태식테일러' 양복장인 김태식(53) 씨의 양복점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 앞에 '베르가모'를 넣은 것이 궁금했다. "베르가모는 이태리의 도시 이름입니다. 베르가모의 '모'자는 '毛'를 연상케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붙였습니다." 설명하는 김 씨는 약간 계면쩍어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양복명장이 스스로의 이름 앞에 출처가 불분명한 서양식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한 불편함도 묻어났다.
"학력이 부족한 것이 자랑은 아니다."며 학력을 너무 부각하지 말아달라는 그의 당부는 그동안 학력 때문에 당한 일이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가면서 양복 관련 전문서적을 보는데도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복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의 전문서적을 보는데 전문용어는 익숙한데다 대부분 도면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그의 학력은 중학교 2년 중퇴다.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세가 기울어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양복점에서 양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양복쟁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양복에 미쳤다고 하는데 미치지 않고서는 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양복기술을 꼼꼼히 가르친 이승우(작고) 씨는 매일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기술을 배우고 대구로 내려가던 그에게 "천상 너는 양복쟁이다. 평생 양복을 떠나지 마라."고 했다.
이제 그는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양복장인이 됐다. 세계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면서 그의 솜씨가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초 대만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가자 여러 사람들이 자신과 사진을 찍겠다며 달려들었다.
"요즘 맞춤양복은 전보다 부드럽고 가볍고 경량화되고 있다. 양복의 본고장은 유럽이지만 우리는 그곳의 유행을 따르되 우리 체형에 맞춰 새롭게 양복을 만들고 있다."
그는 양복이 과학이라고 강조했다. "보기 좋아야 하고, 편하고, 미적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100명이면 100명 모두 각각 다른 체형인 사람들에게 딱맞는 양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인체공학을 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양복쟁이는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저 잘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심미안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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