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시간강사와 대학의 경쟁력

시간강사 교원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통과 문제를 놓고 다시금 시간강사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시작되고 있다. 시간강사야말로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시간강사를 설명해줄 만한 어떤 적합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자체 한국적 특수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확히 말해 시간강사는 비정규직도 못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이라도 임금을 받지만 시간강사는 심하게 말하여 '날품팔이'도 못되는 '시간팔이'일 뿐이다. 생계문제는 물론이고 의료보험 혜택조차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시간강사의 처지에 관한 통념적 지식 이외에 보다 본질적인 학문적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개의 시간강사는 '학문 후속세대'라 부를 만한 젊은 고급인력이 대거 포진해 있다. 한창 공부에 전념할 세대가 교수들 눈치나 보고 '언제나 자신이 교수가 되려나' 하는 해바라기식 인생을 살아가게끔 길들여진다. 그런 조건에서 비판적 학문이 나올 수 없다. 비판 없는 학문이 어떻게 학문으로 옳게 설 수 있을까.

시간강사 사이에서는 '교수보다 실력이 뛰어나면 안된다.'는 이상한 불문율도 있다. 시간강사의 연구업적이 너무 뛰어나면 교수 임용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철밥통'을 넘볼 수 있는 실력있는 인재들의 진입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줄을 서야한다. 밉보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대학원시절부터 줄서기 연습부터 시작한다. 줄서기에서 시작한 인생은 줄서기에서 끝이 난다. 어디선가 서있어야만 '교수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한번 진입하면 영원한 교수이기에 이만한 직장이 없다. 방학이 있고 출근시간이 없고 안식년도 칼같이 찾아온다.

대학의 경쟁력은 한국사회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보장하는 결정적인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외국 이민이나 '영어난민'에 가까운 탈출을 감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교육문제이다. 대학입학 시험의 조그만 변화가 이루어져도 '학원시장'이 요동치고 학교교육은 엉망이 된다.

그런데 그 험한 고통과 가히 전가족적 지원 속에 입학전쟁을 치러서 들어온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의 능력과 자세에 관하여 신뢰를 표시할 수 없다.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은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책조차 제대로 사보지 못하고 끝내는 그네들의 학문수준조차도 별볼일 없는 것이 되고마는 실정이다.

학술진흥재단에서 인문학부흥 등을 부르짖으면서 엄청난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 연구교수 등의 다양한 명칭들과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돈으로 차리라 시간강사들 제대로 대접해주면 더 좋은 학문이 나올 것을 온갖 허황된 명목으로 제도적 장치만 내걸고 있을 뿐이다.

지난 10여 년 이상 쏟아부은 돈만 가지고도 지금쯤은 인문학이 꽃을 피워야 할 터인데 누구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 부흥기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시도때도 없이 인문학의 위기를 부추키면서 그 명목으로 돈을 더 따내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

대학의 연구소들은 학진의 거대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다. 지난여름 전국 대학의 인문학계열들은 프로젝트 문서작성에 공부는 열외였을 것이다. 법과대학은 로스쿨 문제로 운명을 건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사태를 명백하게 보아야 한다. 시간강사 문제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면서 무슨 대학의 경쟁력과 21세기의 미래 따위를 논하는가. 세계 유수의 대학 어디에 우리 같은 이런 비인간적 제도가 존재하는가. 학문줄서기와 동종교배, 집안 나누어먹기 따위의 학문풍토를 조장하면서 학문 후속세대들 자신이 멍들어가는 현실을 극복함이 없이 어떻게 학문의 미래가 보장될까.

시간강사 교원지위에 관한 법적 통과가 이루어질 것 같지않다. 여야 할 것 없이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는 별 관심도 없다. 대학당국은 스크럼 짜고서라도 반대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대학을 근본적으로 바꿀수 있는 개혁의 본질을 애써 회피하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개혁에 올인하자는 언표를 누구나 내비친다.

우울한 코미디다. 대학은 이렇게 또 한편의 코미디를 올가을에도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서 시간강사들의 '시간팔이'는 계속되고 있고, 아이들은 다가오는 수능에 허덕이면서 극단의 순간을 오가고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