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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노란 단풍에 잔뜩 취했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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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부터 올 가을엔 '천불천탑'이 있는 운주사나 강원도 상원사를 꼭 다녀오자고 애들 아버지랑 약속해두고 하루하루 미루고 잡다한 일상에 젖어 결국 늦가을을 맞게 되었다.

가까운 동화사라도 가서 가을 단풍구경을 한번 하자고 의기투합하고 사과, 배, 귤을 주섬주섬 꺼내고 보온병에 따끈한 옥수수차도 끓여 붓고 오전 10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김밥 2인분을 사서 챙겨 넣었으니 이젠 점심걱정도 끝.

애들 아버지도 나도 70대 60대에 선 노인이라는 호칭을 말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에 와 보니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에 대해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며 살자고 무언의 다짐도 자주 하게 되었다.

백안 삼거리에 들어서자 줄지어 선 은행나무들은 노란 옷을 입은 채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우리를 반겼다. 난 가을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쓸쓸함이 묻어 있는 슬픈 가을보다 연둣 빛 새싹이 쏘옥 얼굴을 내밀고 시골집 얕은 산등성이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봄이 좋아졌다.

노란 은행 잎이 늘어선 길에 노랗게 취해 가다 빨갛게 고운 빛깔의 단풍길도 만나며 동화사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염불암으로 정했다. 염불암 가는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평지와 같은 길을 이리 저리 높게 낮게 굽이치게 디자인한 듯한 완만한 경사가 등산에 초보인 우리에겐 안성맞춤이기도 하며 계곡 아래로 펼쳐진 노랑, 빨강, 주홍, 초록의 나무들은 그 어느 수채화보다 아름다웠고 늦가을 정취에 흠뻑 젖게 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인 부도암을 지나 산 중턱에서 김밥을 먹고 사과 한 쪽씩 나눠 먹고 차 한잔을 마시니 이게 곧 신선놀음이 아닌가?

아직도 염불암이 보이질 않는데 애들 아버지는 나를 앞질러 빨리도 올라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며 늘 내 곁에서 저 건강 지키며 함께해 주길 빌었다.

암자에 도착해 법당에 들러 참배한 후 마애여래불상과 보살상 앞에 서니 산아래서 욕심내던 어리석음은 사라지고 마음이 청정해짐을 느꼈다.

오늘 하루는 어느 가을여행 못지 않은 애들 아버지와 나의 소중하고도 소박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다.

박명숙(대구시 동구 신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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