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중순부터 지난달 11일까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란 전시가 열렸다. 관람자들을 조각가의 작업실로 초대해 그들 스스로 한 예술가의 창조 과정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전시의 초점이었다. 퐁피두센터 5층 넓은 공간에는 그의 초기 작품인 큐비즘뿐 아니라 193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 다양한 크기의 가늘고 긴 인체작품 등 전 생애에 걸쳐 제작한 조각, 그림, 드로잉, 판화가 시기별로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실도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작업 테이블 위에는 조각가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각양각색의 공구와 점토 덩어리, 철사, 나무토막 등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작업실 한 모퉁이에는 오래 된 석탄난로가 놓여 있었다. 전시장은 자코메티가 금방이라도 들어와 난로에 불을 지피고 하루 일과를 시작할 작업실처럼 보였다. 관람자들은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졌던 작업실의 신비를 깨고 예술작품이 창조되고 있는 현장에 들어 온 체험을 하게 되었다.
자코메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길게 늘어난 인물상들은 혼란과 참혹함으로 얼룩졌던 제2차 세계대전 전후를 통해 탄생했다. 선전포고 직후 파리를 떠나 제네바로 피란을 간 그는 작업실이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성냥갑 속에 보관할 수 있는 '묘목'(semis)이라 불린 작품들을 만든다. 종전 직후 부인과 함께 파리 작업실로 되돌아 온 그는 성냥갑 속의 작은 작품들을 꺼내 처음에는 크고 양감이 두드러진 조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점차 인물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본질만 추출하게 된다. 인물상을 실처럼 가는 형태로 환원시켜버린 그에게 '진정한 현실'이란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로서 인간답게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객관적인 세계와 고독하고 불안정하며 절망스런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를 부조리로 규정한 실존주의 이념은 인간내면의 깊은 고독감과 슬픔을 드러내는 자코메티의 앙상한 인물들에 구현되고 있다. 이 인물들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교차하는 인간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 작품은 1.5m 평방의 흰 좌대 한가운데 위치한 이쑤시개 크기의 인물이었다. 이보다 더 절체절명의 고독한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응축하고 있는 작품이 있을까.
박소영 갤러리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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