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문턱 2월이 엊그제다. 휴일을 맞아 겨우내 움츠린 몸을 활짝 펴고 마치 바람난 처녀처럼 홀연히 가까운 산을 찾았다. 행선지는 경북 칠곡군의 가산산성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잇따른 왜적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석축산성이다. 비록 지금은 성곽이 무너지고 일부 사라져 흔적만 남아있지만, 산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그때의 감흥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등산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둘러보니 벌써 많은 이들이 형형색색의 옷차림으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러 나섰다. 이들 차림새만 보아도 벌써 봄은 온 듯하다. 정말이지 요즘 등산복은 무채색을 벗은 화려함의 극치다. 산 곳곳이 원색의 물결로 넘쳐나고 등산복을 미처 준비 못한 이들도 간편한 옷차림으로 봄을 맞이한다.
출발이다! 먼저 신발을 고쳐 매고 잘 정비된 등산로에서 좀 떨어진 개울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은 해마다 가을걷이를 하는 나의 보물창고다. 비록 작년에는 운이 없어 송이 맛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난 이곳이 좋다. 진달래와 철쭉, 시원한 그늘, 늦가을 정취, 상고대 등 계절의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입구를 벗어나니 길 양쪽에 앙상한 가지의 진달래와 철쭉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며칠간 계속되었지만 이곳은 아직 겨울기운이 남아있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양지바른 곳 개나리는 어김없이 봄의 기운을 전해준다. 가지에 제법 물빛이 비치는 걸 보니 곧 새순과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바로 봄의 신호들이다. 게다가 산행중 인기척을 느껴 화들짝 놀라는 산토끼, 이름 모를 새소리는 오늘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봄이 오늘 길목에서 산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자연의 숨결과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봄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니면 한겨울을 버텨낸 마른 나뭇가지를 보면서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일까?
이제 3월이 되었으니 점점 봄빛이 완연해질 것이다. 들판의 청보리도 색깔을 아낌없이 드러낼 터이고 매화와 개나리도 특유의 빛깔로 자태를 뽐낼 것이다.
3월의 첫 휴일을 맞아 가까운 산을 찾은 나에게, 이미 봄은 내 가슴과 마음속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오늘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윤재선(대구 수성구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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