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이하는 신학기의 새로운 학생들이지만 그때마다 새롭고 그때마다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각기 다른 수십명의 아이들, 그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일년 동안 잘 자랄 수 있을까. 아무 사고 없이 하나같이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을까. 이런 수많은 생각에 붙잡혀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의 팔을 당겼다. 갑작스런 일이라 무척 놀랐다. 무조건 내 손을 잡고 손바닥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농아였고 옆에는 그의 남편도 서있었다. 우리 반 앞줄에 서 있는 A가 자기의 아이라고, 잘 부탁한다는 글을 써주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대견함과 걱정스러움이 함께 존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온 모든 학부모들의 마음 또한 그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 농아 부부의 희망 어린 눈빛과 염려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걱정일 것이고, 남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식의 학교생활이 걱정일 것이다. 언어의 힘이 부족하여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꼈던 이들에게 A가 문자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면 그들의 감정 교환의 폭이 많이 넓어지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성급한 기대였음을 금방 알게 되었다. 학교 업무가 힘든 것은 당연하지만 A의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한 행동은 나를 인내심의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너머 A의 참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는 지금 남과 다른 부모를 갖고 있다는 것, 그 다름을 이해하기가 몹시도 어렵다는 것, 부모와 감정 소통의 어려움. 이러한 복잡한 심리를 표현할 능력도 참아낼 힘도 없는 어린아이인 것을 어른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A에게 선의의 충고도 필요하고 단호히 꾸짖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을 일일이 들추고 꾸짖는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A가 자신이 진실하게 노력할 때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수준만큼이라도 이해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훗날 더 훌륭한 선생님 만나 바르게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그 해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함에도 해마다 이때쯤이면 입학식 생각이 나고, 그러면 그 아이와 많은 사람들 속을 비집고 내 손바닥 위에 글씨 쓰던 한 어머니의 눈빛이 내 앞에 어린다. 지금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정기(대구 달서구 상인동)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