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38)씨는 염색 디자이너로 일하다 실직 뒤 새 직장을 구하기까지 8년의 세월을 싸웠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스무살 때 등산 중 낭떠러지로 떨어지면서 걸음이 불편한 2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실직 후 살기 위해 무던히도 이력서를 썼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우리 회사는 야근이 많아서', '방문객들이 싫어해서'라는 핑계로 취업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쫓겨났다.
#2. 포장업체에 취업한 지 6개월에 접어든 K(35·정신장애 3급)씨의 취직길도 험난했다. 대구의 한 구청 정신보건센터에서 1년 동안 재활교육을 받고 '회사 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사회는 냉담하기만 했다. 업체들은 '남을 해칠지도 모른다', '발작을 일으켜 불을 지르는 등의 돌출 행동을 할 수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취업, 문전박대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대구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촉진팀 김정덕 담당은 "구직 장애인과 함께 방문면접을 가보면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면접에 응하겠다는 업체도 섭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구지사에 따르면 대구는 전국적으로 장애인 취업률이 가장 낮다. 2007년 3/4분기 대구경북의 장애인 구직자 취업률은 21.9%로 같은 기간동안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한 인천 39.7%의 절반. 전국평균인 27%에도 못미친다.
정부는 50인 이상 상시근로자를 둔 사업장에는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2%로 정하고 있지만, 대구 업체 5개중 1개는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차라리 돈으로 떼우겠다'며 부담금을 내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구지사와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는 연간 4천여명의 장애인들이 구직등록을 하고 있지만 1년 동안 일자리를 못 찾는 사람이 3천여명에 달한다.
◆생활이 곧 차별
지체장애 1급인 S(31)씨는 얼마전 어이없는 경험을 했다. 비슷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집 근처 술집을 찾았다가 '보호자 없이 장애인들만 왔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한 것. S씨는 "성인이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성인 취급을 못받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고용뿐 아니라 교육, 구매행위 등 생활전반에 걸쳐 직간접의 차별금지를 포 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차별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K(36·여)씨는 지난해 자폐증 아들을 인근 A초교에 입학시킨 뒤 매일 함께 등교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장애학생의 경우 학습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시설지원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은 학부모가 학습 도우미 노릇을 해야 한다. K씨의 아들처럼 장애인이 특수학급이 아닌 일반학급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은 대구에만 492명. 특수교사나 학습 도우미가 모자라다보니 학부모가 아이의 모든 학교생활을 뒷바라지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대구DPI(한국장애인협회) 윤삼호 정책부장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한달 후 차별금지법이 본격 시행돼도 차별은 없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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