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성탄절 날 실종되었던 혜진과 예슬은 가족과 친구들의 애타는 기다림을 외면하고 지난달 중순 끝내 주검으로 돌아왔다. 토막이 난 채 암매장되었던 두 어린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은 우리 사회를 경악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법무부는 4월 1일 아동대상 범죄에 관련된 대책으로 '혜진·예슬법'(가칭)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두 어린 희생자의 이름을 딴 이 법안은 13세 미만 아동을 유사 성행위 혹은 성폭행을 가한 뒤 살해하는 범죄자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토막이 나거나 잘려진 신체는 미술에서 근대화를 은유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점을 미국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94년 '조각난 신체:모더니티의 은유로서 파편'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역설했다. 서구사회에서 근대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잘려진 신체가 자주 미술에 나타났다. 이 시기에 한손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루이 16세의 두상을 메두사의 머리처럼 거머쥐고 있거나, 사형집행자가 방금 단두대에서 절단된 두상을 관중들에게 들어 보이는 장면을 묘사한 동판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처형 현장에서 로베스 피에르의 절단된 두상을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드로잉에서는 전횡을 일삼던 혁명지도자가 느꼈던 최후의 심경이 굳게 닫힌 눈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절대왕권을 자랑하던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군중들이 여러 조각으로 해체하는 장면처럼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미술작품에서 신체의 단편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 역사적인 사건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에 앞서 한 문명을 파괴해야 하는 과도기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연일 계속되는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은 '독재자에게 죽음을' '자유, 평등' '공화국이여 영원하라'는 문구가 쓰인 깃발을 흔들며 거의 집단적 무아지경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공포정치와 단두대가 구체제를 타파하는 역사적 소명이 담긴 파괴 행위와 희생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정치적 격동기 19세기가 지나면서 '자유·평등·박애'란 혁명 슬로건은 현재 프랑스의 국가이념이 되었다. '혜진·예슬법'은 오로지 형량을 올리는 데 국한되어 있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범죄를 예방하고 아동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 법안이다. 최근 아동납치미수사건에서 보여준 경찰의 무책임한 대응은 혜진과 예슬의 참혹한 죽음을 거울 삼아 생명을 중시하는 치안책이 탄생되길 기대하는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박소영(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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