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법무 책임자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사태'는 특별검사의 오랜 수사를 거쳐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이어졌다. 검찰의 후속 수사와 재판이 남았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조정하는 일도 남았지만, 일단 이번 사태를 조망할 단계가 되었다.
법을 새로 만들어 임명하는 특별검사의 수사를 필요로 했을 만큼, 이번 사태는 크고 복잡한 일이다. 자연히, 여러 중요한 논점들을 품었다.
가장 근본적인 논점은 경제 부문의 자율성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 부문이 아직도 자율성을 제대로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괴롭게 일깨워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는 실질적으로 정치에 종속되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가장 성공한 기업가들인 재벌 총수들이 권력에 대해 보이는 비굴함이다. 전문 경영자를 서슴없이 '머슴'이라 부르는 그들이, 권력을 쥔 사람들 앞에 서면, 민초들보다 훨씬 비굴해진다. 잃을 것이 많으므로, 어쩔 수 없다.
원래 권위주의적 사회에선 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큰 돈을 모을 수 있고 모은 재산을 지킬 수 있다. 해방 뒤 이 땅의 중요한 재산들은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 남긴 것들이었다. 당시 큰 돈을 모으고 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敵産(적산)'이라 불린 그런 재산들을 헐값에 얻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권력과 결탁한 사람들만이 그런 적산의 '불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그 뒤로도 실질적으로 거의 바뀌지 않았다.
권력이 경제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는 수단은 세금과 규제다. 높은 세금을 매기고 경제 활동을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권력은 줄곧 경제 부문을 통제해왔다.
여기서 부패가 나왔다. 자의적으로 통제를 강화하거나 늦춤으로써, 권력은 기업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든 더 큰 이권을 얻기 위해서든, 기업들은 권력에 봉사해야 했다. 권력에 대한 봉사는 물론 '정치 자금'을 몰래 바치는 것이다. 그런 자금은 기업의 재산을 회계 부정을 통해서 빼돌려야 마련된다. 어떤 기업도 이런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것이 '삼성 사태'가 나오게 된 사회적 지형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안은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정치 권력을 억제해서 경제 부문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특별검사는 이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았다는 혐의를 받은 검사들은 형식적 수사 끝에 혐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큰 자금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나 대통령들에 대한 조사는 아예 없었다. 지금 특별검사가 그런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역사상 맨 먼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이룬 유럽의 역사는 경제 부문의 자율성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유럽의 지속적 경제 성장은 중세 후기에 정치적·종교적 통제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지닌 경제 부문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근대 이후의 경험은 경제 부문의 자율성이 사회 발전의 결정적 요소임을 확인했다.
이제 검찰은 특별검사의 수사를 이어받아 삼성그룹의 비밀 자금을 받은 권력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정경 유착'을 주도하는 권력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런 결탁의 수동적 당사자인 기업들을 벌해도 효과는 클 수 없다. 삼성그룹의 비밀 자금이 어떤 권력자에게 흘러갔는지 밝혀야, 이미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삼성 사태'에서 우리가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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