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세계 最古 고문서를 찾아라"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조완선 지음/Human & Books 펴냄

문학상 당선작과 최종심에 올랐지만 낙선한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추리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올해 세계일보가 주최한 제4회 세계문학상 공모에서 최종심(3작품)에 올랐으나 낙선한 작품이다. 3작품 중 한 작품이 비교적 일찍 제외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은 2등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이 작품을 물리치고 당선된 '스타일'은 현재 '고액 문학상' 타이틀과 '광고지원'에 힘입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1등과 2등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더불어 낙선작과 당선작이 어떤 장단점을 가졌는지, 무슨 이유로 낙선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최종심에서 이 작품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을 심사했던 한 심사위원은 "이 작품은 매력적이고 고급한 대중소설이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의 나이가 많아 당선작으로 선정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설속 여자 주인공 정현선은 소설의 흐름과 배경에 비춰보면 적절한 나이다. 그러나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의 연령대와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주 독자층이 20, 30대라는 분석을 따를 때 그렇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의 낙선에 주 독자층의 기호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 외에도 몇 가지 단점이 지적됐다. 그러나 당선작도 단점은 있었을 것이다. 본심에서 이 작품을 누르고 당선된 작품, '스타일'은 이른바 20대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칙릿' 소설이다.

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추리소설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훔쳐간 한국 고서의 반환문제를 두고 한국과 프랑스는 협상 중이다. 다행히 프랑스 국립 리슐리와 도서관 관장인 세자르는 고서 반환에 협조적이다. 이제 한국은 병인양요 때 빼앗긴 고서를 되찾을 기회를 맞이했다. 게다가 관장은 '직지심체요절'보다 더 오래된 한국의 금속활자본을 도서관 별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직지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가상이다) 직지보다 더 오래된 이 금속활자본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서양보다 200년 앞선 1230년대에 금속활자를 사용했음을 세상에 증명하게 된다. (직지심체요절 역시 서양 최초의 금속 인쇄인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것이다.) 프랑스는 이 금속활자본의 존재를 숨겨왔던 것이다.

세자르 관장은 새로 발견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을 세상에 알릴 계획으로 기자회견까지 자청해두었다. 내일이면 전 세계를 놀라게 할 톱뉴스가 나간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세자르는 자동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외압을 받은 프랑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사고로 몰아가지만 살해당한 정황증거가 속속 드러난다.

추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누가, 그를, 무슨 이유로 살해했을까? 한국인으로 오랫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했던 정현선 박사는 그의 죽음을 추적한다. 이 와중에 전설로만 전해지던 프랑스 국수주의 조직 '토트'가 드러난다. 토트는 프랑스의 해외 문화재 약탈의 선봉이기도 했다. 여기에 '토트'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미국인 헤럴드 박사가 가세한다.

정 박사는 세자르 관장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3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중국인 왕웨이 역시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한국 고문서의 비밀을 알아내고 이를 빌미로 자국의 문화적 이익을 챙기려다 살해당했다.

정·관계에 포진한 프랑스 극우 조직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의 존재를 숨기려 하고, 독일은 한국의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을 자신들이 입수해 숨기거나 없애버림으로써 자신들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이 세계 최고임을 주장하려 한다. 프랑스와 독일, 중국과 한국이 역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는 것이다.

고문서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한사람씩 차례로 살해당한다. 정 박사와 헤럴드는 추적을 통해 고문서의 실체에 접근하고, 이들이 고문서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살해의 그림자 역시 이들에게 가깝게 접근한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정보를 이들이 아는 순간 살해될 수 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 한국과 프랑스, 각국 협상 대표들, 극우단체와 피살자를 넘나들며 긴박하게 전개된다. 고문서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한편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문화적 충돌 상황이 조금씩 드러난다. 독자는 흥미롭게 소설을 읽는 동안 한국의 역사와 고서에 대한 교양을 동시에 알게 된다. 더불어 외국인의 문화재에 대한 깊은 관심과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가벼운 인식을 반성하는 계기도 된다.

이 소설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작은 부분까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어가는 데 대부분 성공하고 있다. 다만 추리소설이 흔히 그렇듯 말미에 약간의 설명을 덧붙인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추리소설 말미에 작가가 덧붙이는 설명은 독자를 배려한 것이지만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가 성석제씨는 "이 소설은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대형추리소설이다. 한국, 중국, 프랑스, 독일 간에 벌어지는 21세기판 책의 전쟁, 문화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소설을 두고 손에 땀을 쥔다고 하던가. 오래간만에 읽은 대범하고 통쾌한 소설이다"고 평가했다.

1권 320쪽, 2권 316쪽. 각권 9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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