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대통령의 선거 빚 갚는 법

언론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책을 성토하기에 바쁘다. 취임 초 앞다퉈 賞讚(상찬)해대던 분위기는 고작 100일을 넘기면서 먼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마치 대통령 아닌 또 다른 이명박의 이야기인 듯. 어제 환호했다가 오늘 돌팔매질하는 군중의 배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잘했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모든 게 이 대통령의 탓이 돼 버렸다는 뜻이다. '정권퇴진'까지 나오는 촛불집회만도 당초 중고생들로 시작됐을 때는 '광우병 미친소'였다. 지금 이슈가 된 쇠고기 수입 관련 굴욕외교니 검역주권 포기니 하는 본질론에서부터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들도 사태 이후 소급해 적용한 감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정작 이 대통령 주변에 아무도 없다. 누가 대신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 줄 명장이 보이지 않는다. 매사 직접 챙겨야 했던 대통령의 '얼리 버드' 스타일 탓일까. 아니면 각료와 참모들이 무능해서일까.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10일 밤 촛불집회 현장을 찾았다가 쫓겨났지만 쇠고기 수입 협상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미 경질이 예고된 후 나선 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예수님이나 正祖(정조) 임금의 이야기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언덕에 오른 예수는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가 마지막 기도를 하고 돌아오니 베드로 등 제자 3명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꾸라져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예수는 말했다. 15세기 이태리 화가 지오바니 벨리니가 마태복음을 근거로 그린 '게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는 오늘의 사태를 보는 듯하다.

"의리가 바로 선 뒤에야 朝廷(조정)이 존중받고, 그런 뒤에야 사방이 복종하고, 그래야만 통치의 도가 행해지는 법"이라고 정조는 말했다. 정조는 "오늘날 사람들은 한결같은 뜻이 없고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모두 분주히 어지럽기만 할 뿐"이라고 개탄했다. 임금의 뜻을 헤아리고 같이 고민해 줄 신하가 없어 밤잠을 설쳤다는 정조의 고백은 지금 밤잠을 설치는 이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촛불집회가 40일 이상 계속되자 이 대통령은 민심 수습의 방안으로 청와대와 내각을 새로 바꿀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파격적이고 과감한 인재 등용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국민의 불만 중엔 '강부자' '고소영' 정권이라 비난받은 인사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대통령은 확인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거꾸로 대통령에게 대선 과정에서의 負債(부채)를 털 수 있는 핑계를 준 셈이다. 대통령은 선거전을 직접 치른 가신들보다 공약을 믿고 대통령에 뽑아 준 전 국민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당선된 뒤 선거 당시 자신에게 인격적인 공격까지 퍼부었던 반대당 법무장관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한다. 물론 그는 링컨을 잘 따랐을 뿐 아니라 군을 최정예조직으로 개편한다. 뿐 아니다. 링컨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자신에게 패배한 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던 당내 라이벌 슈어드, 체이스, 베이츠 3명도 내각에 등용했다.

춘추시대 제나라 桓公(환공)은 한때 자신을 죽이려 했던 管仲(관중)을 재상에 임명한다. 유랑 시절 정적인 형 糾(규)를 모시던 관중이었지만 살려 재상에 등용한 것이다. 그는 관중에 대한 많은 비방이 있었지만 믿고 지켜냄으로써 춘추 5패의 위업을 쌓을 수 있었다. 인재를 얻어 쓰는 데 능력이 우선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기회를 이 대통령은 국정 전반을 쇄신할 반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당선시켜준 국민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 그의 임기는 아직 초반이고 해야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이경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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