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장마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벌어진 유로 2008 체코와 터키 전. 지난 50년간 체코를 이겨보지 못한 터키는 이날도 후반 30분까지 0대 2로 지고 있었다. 터키가 1골 만회해 1대 2로 지고 있던 경기 종료 3분 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체코 골키퍼 체흐는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평범한 크로스를 잡다 놓친다. 번개처럼 쇄도한 터키의 니하트가 동점을 만들었다. 공이 비에 젖었던 것이다. 2분 뒤 니하트는 중거리포로 경기를 3대 2로 뒤집는다. 체코에는 더없이 원망스런 비였지만 터키에는 행운이었다.

윤흥길의 중편소설 '장마'에서는 사돈 간인 두 할머니의 갈등이 장마만큼이나 지긋지긋하다. 국군 소위를 아들로 둔 외할머니와 빨치산을 아들로 둔 친할머니가 6'25 전쟁 통에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외삼촌의 전사통지서가 오던 날. 그날 밤도 비가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장마철이었다.

외삼촌의 전사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간의 악다구니로 발전한다. 외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빨갱이는 다 죽어라"는 저주는 곧 빨치산인 '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저주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 돌아올 것으로 굳게 믿었던 삼촌은 끝내 오지 않는다. 대신 동네 아이들에 쫓겨 구렁이 한 마리가 집안으로 찾아든다.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삼촌의 현신으로 보고 치성으로 달래 내보낸다. 이를 외할머니의 삼촌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받아들인 할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증오를 거둔다. 자식을 잃은 두 할머니가 서로 화해하고서야 장마는 걷힌다.

화물연대의 파업에다 민주노총까지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건설 현장마저 멈춰 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는 촛불집회는 이젠 여의도 방송국을 지키겠다며,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한다며 계속되고 있다.

예년보다 빨리 장마가 시작됐다. 천둥 번개에다 돌풍도 분다고 한다. 올 장마는 중간 중간 긋기도 하겠지만 한 달간 계속된다고 일기예보는 전한다. 그러나 끝나는 시점은 예보하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됐으니 촛불이 끝날까? 언제 먹구름이 걷히고 쨍 햇살이 비칠까.

소설 '장마'는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로 끝맺는다.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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