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많은 인물들이 배출돼 재조명 작업들이 활발하지만 예천의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예천에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천이 배출한 약포 정탁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현대인들이 선생의 업적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직생활 틈틈이 시간을 쪼개 예천지역이 배출한 임진왜란 당시 최고의 재상이었던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4) 선생의 생애와 우국충정 등을 담은 '예천이 낳은 조선의 명재상 약포 정탁'이라는 책을 엮은 공무원이 있다. 예천군청에 근무하는 박근노(43·농업7급)씨.
박씨는 안동대 교육대학원에서 한문교육을 전공하면서 약포 선생에 대해 현재적 재조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교육 과정에서 접했던 숱한 책들은 대부분 안동지역 인물에 대한 평가서였다. 예천지역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당시 최고의 명재상으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역사적 평가나 재조명 없이 후세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약포 선생에 대한 연구작업 필요성을 느낀 것도 이때쯤이다.
이후 박씨는 지도교수였던 청안 이종호 교수의 도움으로 약포 선생의 문집 11권을 모두 번역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뒤져 선생에 대한 기록들을 샅샅이 찾아냈다. 또 그동안 알려져 왔던 선생의 생애와 가계에 대해 지역 향토사학자들을 만나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박씨는 "밤잠을 설치고 지새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하지만 약포 선생의 강직하면서도 치우침없는 성품과 생활 모습을 현대인들이 배울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3년을 작업한 끝에 박씨는 ▷약포의 가계와 생애 ▷퇴계 이황·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과의 교유 ▷선생의 상소문에 담긴 선생의 절개와 우국충정 ▷임란 당시 체험을 담은 한시 풀이 등 선생의 모든 것을 책 한권에 담아냈다.
약포 선생은 임란 당시 좌의정을 제수받아 선조와 광해군을 보필하면서 곽재우와 김덕령 등 명장들을 천거했으며 이순신 장군이 역모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선조에게 '중국은 작은 재주라도 있으면 처인이라도 죄를 면해줬다'는 말로 구명 직언하기도 했다.
특히 선생은 동인이면서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고 50여년간 중앙 관직에 몸담아 온 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박씨는 "선생은 남에 대한 비방과 시기 없이 두둔하고 배려했으며 치우침과 편협됨이 없었다"며 "현대인들이 선생의 성품을 배워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예천·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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