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참여정부가 맛들여놓은 포퓰리즘의 저항이 거세다. 쇠고기 사태 한구석에서 휘날리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의 깃발이 대표적이다. 공기업은 지난 정권 아래서 무풍지대였다. 300개가 넘는 공기업에서 26만 명 직원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대기업 수준이다. 잘나가는 삼성전자보다 더 많이 받는 곳이 100군데 가깝다. 그렇지만 생산성은 그 절반에 불과하고 3곳 중 1곳이 만성적자에 처해 있다. 임기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이런 사실들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단 한번도 공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측근과 추종세력을 이사장, 감사, 임원자리마다 줄줄이 갖다 앉혔으니 입 댈 처지가 아니었다.
잘못 든 버릇은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여기저기 회계말썽을 낳았고, 그 사이 7만 명이 불어났다. 이런 공기업을 지탱하자고 참여정부는 5년간 180조 원이 넘는 지원금을 들이부었다. 모두가 국민 세금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기관들을 국민 세금으로 연명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간 같았으면 진작에 간판을 내렸을 부실경영이다. 아무리 공익성을 앞세운다 해도 엄연히 기업인만큼 자기살림은 자기 힘으로 꾸려야 마땅한 것이다. 두말이 필요 없는 경영의 기본이다. 지금 국민은 자기 입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판이다. 왜 공기업 식구까지 먹여 살리려 등골이 빠져야 하는가. 이것만으로도 공기업 개혁의 당위성은 충분하고 남는다.
물론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이윤만을 내세울 수 없는 특수한 공적 기능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 모든 공기업을 도매금으로 개혁 대상에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고 국민 허리를 휘게 하는 방만한 경영까지 용인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같은 부실과 낭비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을 손들어 주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치밀한 프로그램도 없이 공기업 민영화를 떠들다 쇠고기 사태에 겁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는 중이다. 당초 305개 공공기관 직원 30% 이상 감원 방침은 촛불집회가 터지면서 종적을 감췄다. 구조개혁 발표는 5월 말에서 6월 중순으로 다시 7월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중이고, 대통령은 민영화를 선진화라는 표현으로 눙쳐가며 '국민 의사를 물어 점진적으로 하겠다'는 식으로 뒷걸음치기 바쁘다.
포퓰리즘의 사탕발림에 물든 버릇을 뜯어고치기란 쉽지 않다. 입에 물린 사탕을 빼앗으려 하는 데 가만있을 상대가 없다. 저항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속전속결이 성공 전략이다. 질질 끌어 성공한 개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정부는 때를 놓치고 있다. 지금 같이 눈치나 살피는 리더십으로 공기업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공직사회 개혁도 마찬가지다. 집권 초기 80%가 넘는 인기를 업고 군 개혁까지 해치운 YS조차 백기를 든 게 공직부문이다. 그 시절 YS는 기세 등등하게 공무원 20% 감축안을 들고 나왔지만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으로 나오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렇게 어려운 개혁인데, 거꾸로 공직사회 덩치를 살찌운 참여정부 다음 정권에서 손을 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잔뜩 포퓰리즘 단맛에 취한 공무원집단에 대해 '작은 정부' 요구는 여간 지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교한 전략을 갖고 접근해도 정권 교체기의 처신에 능란한 공직사회의 저항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머슴론'이니 뭐니 공직사회에 스트레스 주는 소리만 꺼내다 반감부터 키웠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그늘을 걷어내야 하는 절박성을 호소해야 한다. 일방적인 몇 마디 담화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대변인을 통한 간접화법으로는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는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국민 앞에 직접 나서 가슴을 울리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상처 난 리더십에서는 더 절실한 자세다. 반발하는 개혁 대상을 향해서도 인내를 갖고 설득에 매달릴 일이다. 국민과의 고통분담이며, 세계적 대세라는 점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려 애써야 한다. 어떡하든 변화의 두려움을 덜어주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김성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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