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억장이 무너지고 부끄럽다" 설 땅 잃은 TK정치권

李정부 탄생 일등공신 자부심이 자괴감으로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는 대구경북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하자 대구경북 주민들은 너나없이 환영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15년간 계속된 TK(대구경북) 핍박이 끝나고, 대구경북의 경제를 회생시키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과 넉달 열흘. 촛불 시위에 이 대통령이 흔들렸고, 그 과정에서 대구경북 사람들이 요직에서 밀려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 위기요 지역의 위기라 할만하다. 대구경북이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과 그 원인을 진단하고 타개책을 찾아본다.

◆국회 권력 부산경남 장악=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부산·경남울산의 잔치였다.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허태열 최고위원. 유일한 경북 출신 후보였던 김성조 의원은 꼴찌를 했다. 국회의 가장 큰 어른인 김형오 국회의장내정자도 부산 출신이다. 전대에 참석했던 경북도당 한 당직자는 "억장이 무너지고, 대구경북이 부끄럽다"고 했다.

강재섭 전 대표가 정치판을 떠나고, 박근혜 전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대구경북의 좌장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이상득 의원은 정두언 의원과 수도권 소장파 의원 몇몇의 공격에 손발이 완전히 묶여 있다. 영양 출신인 이재오 전 의원도 떠났다. 대구경북으로서는 국회 권력에 접근할 통로가 없어진 셈이다.

유일한 통로라면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영남고를 졸업한 홍준표 원내대표뿐.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그간 서울에서 주로 활동해 대구경북민과 친밀도가 낮다.

서상기 대구시당위원장은 '대구경북 몰락, 부산경남 천하'로 국회와 한나라당의 현상황을 표현했다.

◆청와대도 부산경남판=국회에 대구경북 인사가 밀려난 자리를 부산경남 인사가 차지하듯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수석,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등 대구경북 인사가 밀려나고,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병원 경제수석, 박형준 홍보기획관 등 부산경남 인사가 포진했다.

수석이 바뀌니까 대구경북 사람들은 비서관, 행정관 자리에서도 하나 둘 밀려나고 있다. 주호영 의원, 윤건영 전 의원 등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들이 추천해 청와대에 입성한 보좌진들이다.

그래서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의 공백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는 '왕비서관'이라 불리며 때론 시기도 받았으나 각종 인사에서 10년 좌파 정권의 잔재를 걷고 이 대통령과 대통령의 형인 이 의원 등의 뜻을 담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인사들을 요직의 전면에 배치하는 작업을 주도해 왔다. 한 행정관은 "대구경북 출신 청와대 중하위 보좌진까지 쇠고기 파동에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맏형 격이었던 박 전 비서관의 공백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행정관은 "류우익 사람, 박영준 사람이라고 요직에서 배제되는 것이 현재 청와대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무 기능, 홍보 기능 강화란 명분 속에 새로 임명된 수석들은 제 사람 심기에 골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는 부산경남 인사의 전면 배치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한 주요 당직자는 "대구경북 사람이 빠진 자리에 부산경남 사람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대구경북 사람들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며 "청와대에서 대구경북 출신 가운데 가장 높은 직급이 김두우 민정1비서관이란 사실은 비극"이라고 했다.

◆4대 권력 기관도 부산경남 전성시대=국정원 국세청 검찰청 경찰청을 '4대 권력 기관'이라고 부른다. 그 권력 기관의 수장도 75%가 부산경남 출신 인사이고 대구경북 출신 인사는 전무하다. 김성호 국정원장, 임채진 검찰총장, 어청수 경찰청장이 부산경남 출신이다. 특히 최근들어 이 대통령이 이들 권력 기관에 공직자 검증 작업을 맡기면서 권력이 세지고 있다. 공기업 임원 공모에 나섰던 한 인사는 "부산경남 인맥이 검증 작업을 주도하니 부산경남 사람이 득을 보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 정권은 부산경남 정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대구경북 인사들은 부산경남 인사들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이 되자 숨을 죽이고 있다. 자칫 역차별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TK라고 해서 15년 차별을 받았는데 다시 역차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니 기가 막힌다"고 한탄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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