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촛불, 한국경제 불끄나?…책임공방 후끈

"이제 그만" vs "정책실패 전가"

인터넷에 다시 촛불집회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최근 들어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본격화됐다. 종합주가지수가 1600선을 위협하는 등 빨간 불이 켜지면서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줄을 이었는데, 적지 않은 이들은 촛불집회를 표적으로 삼았다.

증권포털 팍스넷 게시판에는 'PD수첩이 광우병을 과장시켜 극렬촛불 불법시위를 조장해 주식 투자자들 대부분이 쪽박 차게 생겼다' '촛불만 꺼지면 주가는 올라간다' 등 의견이 잇따라 올라왔다. '촛불집회와 현 주가의 연관성은 0.1% 정도에 불과하다' '주가를 촛불집회와 연관하는 발상은 듣보잡 이론에 불과하다' 등의 반론도 속속 등장했다. 양측의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는 등 분위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포털사이트와 블로그에서도 경제 위기를 둘러싼 촛불집회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촛불 꺼야 경제 산다" 책임론 들썩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연일 계속되는 시위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직접투자를 기피하게 하고 국내 기업의 투자도 위축시키고 있고, 한국 경제의 신인도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 발표 현장에서 "두 달여 지속한 시위·집회로 인해 주변상가는 물론 경제 전체로도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지역투자 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최근 핫라인을 통해 한국에 가도 괜찮으냐는 (외국인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며 시위 장기화의 파장에 대해 언급했다.

비슷한 시각은 경제계에서도 나왔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가 최근 개최한 회의에 참석한 외국인 경제전문가들이 "수도 한가운데서 불법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아무도 한국에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보수 성향 일간지에 실렸다. 이화언 대구은행장도 최근 투자자 설명회 차 들른 싱가포르에서 "한국이 촛불집회로 시끄러운데 괜찮으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 관련 14개 단체도 3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촛불집회 장기화가 경제를 위기로 치닫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용호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촛불집회 장기화가 한국경제에 부담이 되는 건 틀림없다. 외국 투자가들이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는 불법적 요소가 지배하는 사회에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촛불은 핑계일 뿐"

정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제기하는 '촛불 핑계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한국증시가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충격을 받는 마당에 정부가 경제 정책 실패를 촛불집회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는 과거 고도 성장기에 항상 정치적인 불안 속에서 성장한 나라인데 일시적으로 저녁에 촛불집회가 있다고 해서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촛불집회가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은 오히려 "현재의 경제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국내 및 국제 경제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해온 경제정책 오류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고유가 조짐이 있었는데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고환율 정책을 펼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 주식 시장에 거품이 있어 어차피 내려갈 타이밍이었다"며 "정부가 금융시장의 거품을 미리 빼놓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지금 워낙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크기 때문에 고환율 정책을 쓰면 물가 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지금까지 해 온 고환율 정책을 꺾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위기 대처 능력을 키워라

촛불집회 책임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 부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400여명의 경제원로들로 구성된 한국선진화포럼 회원 22명은 지난달 말 발표한 시국 선언문을 통해 '고유가가 지속되고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커질 정도로 대내외 경제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 운영 미숙으로 정부의 신뢰도는 최저 수준이다. 행정부나 국회는 위기 극복을 위한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제3의 오일쇼크'라고까지 표현한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촛불집회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경제 적신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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