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거일의 시사코멘트] 사법부의 위기

난폭한 시위대에 둘러싸여 '인민 재판'을 받는 경찰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기막힌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남방은 풀어헤쳐졌고 속옷 상의는 찢겨져 너덜너덜했다. 가슴과 배의 맨살이 다 드러나 있었다"고 조선일보는 묘사했다. 그 경찰관의 '죄목'은 호텔과 신문사 건물들을 훼손한 폭력범을 체포한 것이었다.

좌파 인터넷 방송국이 생중계한 그 '인민 재판'을 주재한 '재판장'은 변호사였다. 그는 시위대와 경찰관의 얘기를 들은 뒤, 그 경찰관을 "시민을 납치하려다 주변 시민들에게 체포된 현행범"으로 규정했다.

'인민 재판'을 받는 경찰관의 모습은 지각이 있는 시민들의 가슴을 분노와 탄식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어이없고 걱정스러운 것은 '재판장' 노릇을 한 변호사가 법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법에 따라 현행범을 체포한 경찰관을 '시민을 납치한 현행범'으로 규정한 것이다. 법 덕분에 직업을 가진 변호사가 법의 권위를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하는 광경이 이 사회 말고 어디에서 또 나오겠는가?

게다가 그는 여느 변호사가 아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속한 변호사다. '민변'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절 사법 분야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고 지금도 큰 힘을 지닌 단체다. 따라서 그의 생각은 지금 우리 주류 법률가들의 생각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와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있다. '386 세대'라 불린, 좌파 이념에 깊이 물든 세대가 사회의 중심 계층이 되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그런 이념적 지형의 변화는 사법 분야에서 특히 큰 문제가 되었다.

법의 해석은 현대 국가들에선 대체로 사법부가 맡는다. 그래서 사법부는 실질적 입법부의 성격을 지녔다. 1930년대에 미국 대법원장을 지낸 휴스(Charles Evans Hughes)의 말대로, 법은 실제로는 재판관들이 그것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률가들의 생각은 중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의 특질이 짙어진 데엔 사회주의에 깊이 물든 법률가들의 법 해석이 큰 몫을 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임명한 일은 중대한 잘못이었다. 감사원장은 중요한 자리지만, 대법원의 판결에 참여하는 대법관에는 비길 수 없다. 그래서 현직 대법관을 다른 자리에 임명하는 일은 사법부의 권위를 낮추는 일이다. 물론 본질적 문제는 좋은 대법관이 물러나면, 그 자리에 사회주의에 물든 법관이 임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중요한 판결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금 대법원을 구성한 대법관들의 이념적 성향은 자유주의자들이 안심할 상태가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녔으므로,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맞는 법관들로 대법원을 채우려 애쓴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기 사람들로 '법원 채우기(court-packing)'를 시도했고 그의 임기 동안 재산권이 많이 훼손된 일은 널리 알려졌다. 우리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 성향의 법관들로 대법원을 채우려 애썼다.

원래 이 대통령은 이념에 대해 관심이 적다. 그래도 대법관이 워낙 중요한 자리이므로, 그는 후임자의 선택에 마음을 써야 하고 자유주의자들은 지켜보아야 한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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