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전 10시 경북 의성군 안계초교 체육관. 체육관에는 300여명의 초등학생들과 20여 명의 교사들로 빼곡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두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인형극 무대를 응시했다. 곧 신나는 음악과 함께 커튼이 걷히자 '와'하고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교사들도 신기한 듯 인형극을 보다가도 장난기가 발동하는 아이들에게'아빠 다리(양반다리)'를 주문하곤 했다.
이에 앞서 인형극 시작 30분 전 무대 뒤편.
"라이터 있어요?"
리허설을 하던 한 20대 여성은 대뜸 라이터부터 찾았다. 풀어진 인형 의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라이터로 능숙하게 실밥을 정리하는 여성은 2년 전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 에마 렐라타도(27·구미 비산동·필리핀 출신)씨. 21개월 된 아들 재광이의 미래를 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재광이가 커서 한국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다문화 인형극을 통해 만들고 싶어요."
구미 결혼이주민지원센터가 지난 4월부터 다문화에 대한 사회인식 전환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인형극단'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단원은 전문극단 '한 울타리' 단원 5명과 결혼이주여성 10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됐다. 다문화 가정 자녀가 겪는 또래 아이들로부터의 따돌림, 결혼이주여성들의 고부간 갈등 등 다문화 가정의 애환을 진솔하게 다뤘다. 인형극은 학년에 따라 '나는 행복해질 거예요'(류길수 작), '무지개 뜬 숲 속'(김종헌 작), '감자 먹는 사람들'(이상도 작) 등 3편이 무대에 오른다.
장흔성 구미결혼이주민지원센터장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문화 교육 아이템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극을 고안하게 됐다"라며 "아이들 호응이 너무 좋아 연말까지 경북 23개 시군의 어린이집, 초·중학교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인형극은 현재까지 60여 곳의 학교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이날 인형극을 유심히 지켜보던 다문화가정 2세 은주(8·가명)양은 "인형극을 보고 엄마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다"며 좋아했다.
이 학교 김형우(6년)군은 "다문화가정에서 실제 일어나는 가족 내 갈등을 인형극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같은 학년 전현수군도 "다문화가정 친구들과도 더 사이좋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송인록(59) 교장은 "급증하는 다문화가정과 그 2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인형극으로 표현해 아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