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비는 오지 않고 마른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공기 속에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 찌뿌드드한 날씨가 이어진다. 남쪽의 火(화)를 막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는 숭례문이 어느 노인이 지른 불에 불타고 세종로 거리에 촛불이 60일 이상 타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도 국회도 갈팡질팡이다. 정부와 정책당국의 경제정책은 좀처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어 보이고, 18대 국회는 개원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민생경제는 어쩌란 말인가?
주가지수가 지난해 7월 2,000을 돌파하면서 가졌던 장밋빛 화려한 꿈이 이달 들어 1,500대 중반까지 미끄러졌다. 외국인들은 지난달 9일 이후 내리 팔자 행진이다. 소비자물가는 5월 4.9%에서 6월은 5.5%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고용시장과 건설시장은 살얼음판이다. 한국경제성장률도 1/4분기 5.8%에서 하반기는 3%대로 하락폭이 커질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전망대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로 치솟으면 우리 경제성장률은 2%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난 4년간 성장률의 반 토막 이상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바짝 다가선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세계로 눈을 돌려도 그쪽도 상황이 별로 좋지가 않다. 서브프라임 이후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은 미국경제는 지난달 실업률이 5.5%를 넘어섰다. 조만간 실업률이 6%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올해 1/4분기 경제 성장률도 0.9%로 경기 둔화가 완연하다. 아마 올 한 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이면 박수라도 쳐야 한다. 내수가 경제성장률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의 주유소 휘발유 소매가격은 지난해 갤런당 약 3.1달러에서 4.0달러에 가까이 가고 있다. 차 없이 살 수 없는 나라에서 기름값이 이렇게 올라가는데 소비자들의 지갑은 더욱 얇아질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8월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2006년 12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아오더니, 아직도 미국이 요구하는 2006년 달러당 위안화의 25%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2006년 위안화의 대미 달러화 환율에 비해 최근 약 13% 절상에 그쳐 있다. 미국은 당시 환율로 최대 50%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중국도 고유가의 충격을 언제까지 저임금 노동력으로 막을 수 없다. 물가상승률이 8%를 넘어 10%를 향해 가고 있다. 물가가 오르자 금리인상 요인이 충분하고, 금리를 올리면 그렇게도 버티던 위안화의 대미달러화 환율도 절상된다. 저임금 노동력으로 저가의 상품을 수출해온 중국이 이제 물가상승 요인을 수출단가에 고스란히 반영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 원자재 및 곡물 가격 상승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요인이다.
이래저래 적어도 앞으로 5년간 한국경제는 물가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명목 경제성장률이 5%이고 물가상승률이 5%이면 실질경제성장률은 0%다. 물가 상승을 최소화하면 성장률은 최대가 된다. 지금은 내수경기를 진작하려들다가 자칫 물가상승의 가속페달을 밟는 자충수를 둘 수 있다. 그렇다고 시중에 통화량을 줄여 물가를 잡자니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가계부채의 상환 압박으로 이어진다. 건설사의 줄도산도 예상된다.
수출경쟁력에도 악조건이다. 금리를 올리면 환율이 덩달아 절상될 것이고, 수출단가는 떨어져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이 한국경제의 수출주도 산업의 타격은 불 보듯 뻔하다. 곳곳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셈.
모든 일에는 탈출구가 있지만 이번만큼은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에는 외환위기가 있었고, 또 그 10년 전에는 민주화가 있었다. 지금 그때와 비슷한 모습들이 한꺼번에 겹쳐지고 있다. 과거 1·2차 오일쇼크 때처럼 6개월 이내에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 어두움은 새벽을 가져다주는 희망의 어두움이 아니라 한낮에 태풍이 몰고 온 검은 먹구름이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단 하나. 유가가 내일부터 배럴당 90달러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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