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12월을 꿈꾸는 jun의 이야기'를 포함, 5개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표제작 '12월…'은 작가가 꿈에서 접했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회사는 구조조정 분위기다. 그는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자에 올랐음을 직·간접적으로 느낀다. 압박감 속에서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일찍 퇴근한 이후 거의 이틀 동안 잠을 잔다. 잠들기 전에 느꼈던 압박감이 꿈에서는 더 과장된 형태로 다가온다. 집이 붕괴된다. 그는 저격용 총을 구입해 살해에 나선다. 경찰에 쫓기고 극단의 위험과 직면한다. 거리를 걷던 그는 문득 누군가 총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달렸다. 정조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달렸다. 총을 겨누는 사람은 다름 아닌 회사의 부장이었다. 부장의 총을 피해 달아난 곳은 바다가 보이는 낭떠러지였다. 부장은 여전히 그를 겨누고 있다. 그는 바다로 뛰어들 것인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질 것인가 잠시 고민한다. 결국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든다. 절벽 위에 서 있으면 총에 맞아 죽을 게 뻔하지만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면 자신이 알 수 없는 어떤 상황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은 분명히 추락이지만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히 말하자면 해고 위기에 처한 월급쟁이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랄 수 있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탈출하고 싶은 현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양유정은 등단 10년 동안 단 두 권의 소설집만 냈다. 2005년 펴낸 '마녀가 된 엘레나'와 이번에 펴낸 '12월을 꿈꾸는 jun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이야기라는 점, 흥미로운 이야기가 틀림없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다소 어렵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소설책 소개는 짧게라도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유정의 소설은 '줄거리'보다 '느낌'을 이야기하는 편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진 여러 편의 중·단편소설을 묶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줄거리 자체는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유정의 소설에는 살해, 전쟁터, 무기, 폭발, 명령, 작전 등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배경이 꼭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살인의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갇힌 자와 가둔 자, 죽어야 하는 자와 죽이는 자가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평화롭게 일상을 유지하는 자가 천연덕스럽게 끼어든다.
전쟁은 명령에 의해 수행되는 '기계적 행위'이지만 양유정의 소설 속 전쟁은 기계적 행위를 능가하는 섬뜩함이 있다. 그의 전쟁에 나타나는 살육은 전투행위에 따르기 마련인 살상이 아니라 '살해'의 느낌을 준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사살하는 느낌과 다른 '살해'의 느낌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작품 배경은 전쟁터이고, 적군을 죽이고 있지만 그 행위는 '범죄'처럼 보인다. 특히 참호 속에서 잠자던 20여명의 중공군들을 하나하나 목 자르고 보니 아군이었다는 설정,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보기를 세우기 위해 단행하는 처형은 '살해'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전쟁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전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후 50년 역사를 포괄적으로 볼 수 있어요. 격동기 역사의 한순간을 통해 주변부를 깊이 있게 살피는 것이지요." 그가 전쟁을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삼는 이유였다. 작가는 "특히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리의 몸짓보다 못한 인간의 저항, 파리 몸무게의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양유정의 소설은 시공간이라는 벽을 가볍게 통과한다. 현재와 과거를 가볍게 뛰어넘고, 한국과 먼 외국을 단숨에 폴짝 뛰어넘는다. 1953년 7월의 강원도 산골짜기 전쟁터,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의 한 작은 도시, 중세 유럽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 아폴린, 제롬, 아실, 제프리 등 외국인 이름들이 작가에게는 조금도 낯설거나 불편한 공간이 아니다.
작가 양유정은 넓고 다양한 소설적 배경에 대해 "대부분 한국문학 중·단편 소설의 소재와 주제가 협소하고 특히 소재가 내면의 문제와 개인의 사생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소재의 고갈을 가져올 수 있고 차별성이 적어 작품의 개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문학을 다소 멀리하고 외국소설, 외국영화를 주로 접하다 보니 글에서도 외국인과 외국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한국사가 아닌 세계사를 접할 때 여러 소재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는 틈날 때마다 '구글어스(Google Earth)'를 통해 세계 곳곳을 살핀다고 했다. 그런 작업들이 소설 무대를 넓혀주는 배경이라고 했다.
작품 무대가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만큼 양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는 상상의 소산이다. 작가는 "경험적 사실만을 근거로 할 경우 소설의 범위가 그만큼 좁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유정은 '거의 미쳐 산다'고 할 정도로 음악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소설에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단 한편도 없다.
양유정의 소설을 읽다 보면 뜨거운 햇볕, 짙은 안개, 칠흑 같은 어둠, 꿈속의 세계 같은 느낌을 자주 접한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때문일 것이다. 또 뚜렷한 줄거리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말이 몽환적이기 때문이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주인공들이 '어쩌면 이것은 꿈속의 일이 아닐까' 하는 다소 나른한 정신상태로 빠져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다소 몽환적인 결말이야말로 양유정 소설을 '줄거리'로 규정할 수 없도록 하는 커다란 요인이다.
작가 양유정은 소설가이자 건설회사 월급쟁이이기도 하다. 그는 "전업작가로 나선다고 해서 더 나은 소설을 쓸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직장생활이 소설 아이디어를 주는 면도 있다. 무엇보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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