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금강산 비극의 교훈

가장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관광지에서 우리 국민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지금이 냉전기 남북대결 상황도 아닌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허탈감이 앞선다. 다른 곳도 아닌 '금강산'에서 말이다. 지난 10여년에 걸친 화해협력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이런 야만적인 일은 그 어떤 이유나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 답답하고 화가 나는 점은 정부의 대응과 북한 당국의 태도다. 우선, 우리 정부에는 과연 위기대응 시스템이 있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초기 대응에 수많은 문제점을 보였다. 대통령 보고과정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허술하다. 정부의 뒷북치듯 하는 대응방법도 한심한 지경이다. 상황이 종결되고 한참 지난 뒤에 관계장관회의를 하지 않나, 통일부와 합참의 보고 내용이 다른 것을 갖고 우왕좌왕하질 않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허겁지겁 조사단을 만들긴 했지만 국민의 생명에 관한 중대한 안보 문제를 민간회사인 '현대 아산' 측에 맡겨놓고 있는 신세다. 북한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진상은 알아야 될 거 아닌가. 당연히 재발방지책도 마련되어야 하는 일이다. 정부는 이렇다할 수단 없이 북한의 태도 변화만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현 정부는 북한당국과 대화의 채널이 아예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1순위 과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북이 미우나 고우나 남북관계라는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외교안보 전체가 꼬이게 되어 있는 것이 분단 한반도의 처지다. '비핵'과 북한의 개방을 내세우면서 북한과 접촉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일들이 가능한 지 묻고 싶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 우리는 이미 종속변수가 되고 북미 간에 있은 협의와 합의 내용을 쫓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감정적으로 싫으니 대하기도 싫다는 유아적 사고가 낳은 귀결이다.

현 정부 출범부터 많은 북한전문가들이 대북정책의 부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를 대결적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정서적으로 북한이 싫더라도, 앞 정부들의 정책과 차별화하고 싶더라도 남북관계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고언을 해왔다. '通美封南(통미봉남)'당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대결적 긴장 뒤끝에는 반드시 나쁜 일들이 따른다는 남북관계의 패턴을 상기시켰다.

이 사람들의 비판과 고언은 무시되었다. 이제 우리식으로 할 테니 가만 있으라고 했다. '친북좌파'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예사로 붙이면서 말이다. 보수고 진보를 따지기 전에 안보와 평화가 중요하다는 점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남북관계를 강경일변도로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7·4공동성명'을 만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을까. 화해협력의 길밖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런 식이면 안 된다. 관광하러 온 손님에게 총질을 하는 것은 만행이다. 더구나 사고 책임을 남측으로 돌리고 진상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셈이다. 북한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지 않을 노력은 남과 북이 같이 해야 한다.

금강산 비극의 교훈은 남북이 대결과 적대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일상적 안위, 전반적 안보, 평화통일의 머나 긴 여정 등등 그 어떤 관점에서도 대결과 적대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가치는 없다. 매사가 그렇지만 특히 남북관계에서 감정주의는 보수건 진보건 경계해야 할 이념이다.

이수훈(경남대 교수, 국제정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