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청에서는 지난 7~11일 전 직원을 상대로 희한한(?) 설문조사가 벌어졌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반바지 또는 칠부바지를 입고 근무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241명의 직원이 참여한 설문에서 절반이 넘는 62.7%(151명)가 찬성 의견을 냈다는 사실.
이에 따라 구청은 전격적으로 15일부터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근무를 허용했다. 그간 관공서들이 실내 에어컨 온도 높이기, 조명 끄기, 넥타이 안 매기 등의 에너지 절약 대책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반바지 출근은 처음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일단 종합민원실 등 출장이 적은 부서를 중심으로 반바지 출근을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와 구군청 등 관공서가 15일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홀·짝수 차량 운행제를 시작한 가운데 가로등 격등제 실시, 에어컨 온도 높이기, 근무복 조정 등 에너지 절약을 위한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같은 일방적 지침 중심의 대책은 민원인 불편, 업무 효율성 저하와 야간 방범 소홀 등 에너지 절약 효과 못지않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구 한 보건소의 경우 이달 초부터 행정안전부에서 권장한 냉방기 온도인 27℃보다 높은 28℃로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바람에 아기를 데리고 온 민원인들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아이들이 보건소에 왔다가 땀띠를 얻어 가서야 되겠느냐는 것. 보건소 한 직원도 "민원인들을 위해 냉방 온도를 낮추고 싶어도 직원들을 위해 낮춘 것처럼 비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가 11일부터 시작한 가로등 격등제는 야간 방범 소홀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시는 교차로·횡단보도 주변, 방범상 필요한 구간과 산업단지 주변 도로 등을 제외하고 전체 가로등 5만2천432개 중 절반 이상을 끈다는 방침이다. 박정현(45·서구 비산동)씨는 "여름철이면 심야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다가 마음 놓고 밤거리를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무원 차량 홀·짝수 운행제에 대한 걱정도 벌써부터 쏟아진다. 한 경찰관은 "외근 활동을 하려면 빠른 기동력이 필수"라며 "버스와 지하철 타고 범인 잡으러 다니란 말이냐"고 한숨을 쉬었다.
또 한 구청 공무원은 "매일 아침 고교생 딸을 자가용으로 통학시켜왔는데 앞으로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다시 집에 차를 놔두고 출근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관공서를 중심으로 한 1단계 에너지 절약대책에 더해 야간 업소 영업 제한 등 민간을 대상으로 2단계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계명대 환경학부 김해동 교수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꿔야 하지만 자율적인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가 곧 돈'이라는 등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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