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소모성 논란을 줄이려면

과학기술이 역사를 선도하는 시대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은 일반 대중은 물론 때론 과학자들의 생각마저 앞질러 갈 만큼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00년 전에는 일상생활용품이 200여개였는데, 지금은 3만2천여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불확실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불확실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모든 분야에서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 자원문제 등을 포함한 현대의 모든 문제점들은 인간의 욕심으로 야기된 균형감각의 상실 아니겠는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 잡지에서 '文史哲科 600'(문학서적 3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100권을 읽자는 뜻)이란 글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역사를 선도하는 시대에 과학서적이 빠진 건 아쉬웠다. 그래서 '文史哲科 700'을 새롭게 권한다. 이는 문학서적 300권, 역사서적 100권, 철학서적 100권에 과학서적 200권을 더한 것이다. 여기에 20, 30대에 좋은 시집들을 많이 읽는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文史哲科에서 문학은 언어의 보고, 역사는 체험의 보고, 철학은 초월의 보고라고 한다면 과학은 전적으로 자연의 오묘한 질서에 의한 것으로 신비의 보고, 혹은 진리의 보고라고 하고 싶다. 모든 학문을 통해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책들을 접하는 것은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우리들의 생각도 균형감각을 가지며 사고력과 상상력을 향상시켜,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혜는 지식보다 입체적이고 균형감각이 있어 사물을 단순한 흑백논리보다도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논리로 판단한다. 무지개 색깔의 아름다운 심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하는 인격의 동반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참고로 빛은 적게는 7가지 색으로 많게는 수천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으며, 빛 속의 여러 가지 색으로 우주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들의 생각에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을 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엔 아름다운 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다.

균형 감각이 있고 법과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성숙한 선진 시민이 되기 위한 요건으로도 '文史哲科700+詩'가 결정적이다. 촛불시위를 보자. 왜 우리는 이런 문제를 정치논리가 아닌 과학적인 논리로 풀지 못할까? 흑백논리가 아닌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로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시위현장에 나온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망울이었다. 쇠파이프와 물대포가 난무하는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언론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이런 것을 보도하는데도 신중해야 한다. '文史哲科 700'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국민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과학적인 논리를 강화한다면 소모성 사회논란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책임있는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文史哲科 700'은 필수라고 본다. 흑백논리가 아닌 다양한 색깔을 가진 무지개논리로 무장된 언론인이 바로 지혜있고 용기가 있는 언론인이 아닐까.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국민들에게 '文史哲科 700'은 물론 시를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좋은 시를 많이 읽는 것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필자의 서재에는 수백권의 시집이 있다. 힘들었던 외국 유학시절 시를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다스렸다. 시처럼 순수하고, 시처럼 아름답고, 시처럼 예리한 언어는 없다. 시어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를 많이 읽으면 작은 촛불은 있을 수 있어도 쇠파이프나 물대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를 통해서 우리들의 생각에, 우리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을 입힐 수 있어서다.

장인순(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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