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보트 타고 바나나 따러 가는지 알았는데…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난달 언니와 난 어머니를 모시고 사이판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물 공포증이 심한 우리는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돈 2만원 아끼려다 황천길 갈 뻔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와 난 휴가철만 되면 들뜬 마음으로 세계 각국을 여행했지만 진작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큰맘 먹고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 경비와 쇼핑 경비를 언니와 내가 각각 책임지기로 하고 말이다. 쇼핑이나 관광, 해수욕 등 모든 일정을 어머니의 편의에 맞췄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으로 막상 물놀이를 할 때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구명조끼와 오리발을 끼고 바닷물에 둥둥 뜬 채 열대어와 산호초를 만져보는 것은 난생 처음 맛보는 짜릿함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슨 용기가 났는지 우리는 바나나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함께 여행을 했던 부부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청년을 통해 단돈 1만원에 바나나보트를 탈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그 엄청난 일을 시작했다. 1인당 3만원인 바나나보트를 싸게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일행은 곧장 인도네시아 남자를 만나러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나나보트를 타는 곳이 모래사장이 아닌 배 선착장이었다. 우리는 별일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배에 올라탔다. 청년들은 이내 배를 몰았고 바나나보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나나보트를 매단 낚싯배가 10분 이상을 질주하더니 시꺼먼 바닷물이 넘실대는 남태평양 한가운데까지 가는 것이었다.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강한 바람소리에 묻혀 들릴 리 없었다. 그 순간 바나나보트가 뒤집어졌고 일행 5명은 순간 꼬꾸라지면서 바닷물에 빠졌다. 정신을 차려 부랴부랴 어머니를 찾았다. 50대 중반의 어머니는 사색이 돼 두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리고 언니를 찾았다. 토끼눈이 돼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다급히 다시 배에 올라탔고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공포에 질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며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배가 뒤집히면서 앞사람 다리에 눈을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공포심이 웃음으로 변했고 그제서야 서로를 보며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가 내게 한마디 하셨다. "막내야, 엄마는 바나나보트 타자고 하기에 그 배 타고 바나나 따러 가는 줄 알았어. 여기가 열대지방이잖아."언니와 나는 또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추억이 되어 두고두고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정아진(대구 중구 남산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