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 사이공에 뿌린 눈물

처가 찾은 사위 "한국에서 효도하겠다"며 눈물 펑펑

베트남은 '눈물의 땅'이었다. 멀리 한국으로 딸을 시집보내고 그리움에 눈물을 쏟는 부모들이 곳곳에 보였다. 늘 애달프고 가슴 한쪽이 뻥 뚫린 듯하다고 했다. 베트남 친정 부모들은 취재진을 붙잡고 행여 딸 소식이라도 하나 더 들을까 가슴 졸이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현지 취재를 통해 경주의 결혼 이주여성 2명과 베트남 친정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 그리운 친정집

지난 5일 오전 10시35분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4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 덜컹거리며 달린 꼬불꼬불한 시골길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넓게 펼쳐진 논에선 원뿔 모양의 베트남 전통모자 논(non)을 쓴 주민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물소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딸 소식을 전해줄 취재진이 혹 길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며 느엔 티탄(23)씨의 아버지 느엔 탄둥(45)씨는 한참 전에 큰 길까지 오토바이를 타고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길은 논길보다 더 좁아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다. 인근에서 오토바이 두 대를 빌려 다시 20여분을 달려 겨우 도착한 티탄씨의 친정집.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띌 정도로 으리으리했다.

"사위 덕분에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을 갖게 됐어요."

어머니 징티롱(43)씨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사위 이재윤(39)씨 자랑부터 길게 늘어놨다.

"사위가 새로 집을 지으라며 1천만원이나 보내줬어요. 딸을 보낸 게 아니라 아들 하나를 더 얻었어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준비해둔 듯 과일을 내놓더니 대뜸 서랍장에서 앨범을 꺼냈다.

"우리 사위 인물이 훤칠하죠? 우리 사위가 최고예요."

한참 동안이나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딸과 사위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징티롱씨는 갑자기 "딸아이도 울지 않는데 사위가 얼마나 서럽게 울어 대던지…"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7월 베트남을 찾은 이씨 부부가 베트남에서 한 달간 머물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 사위 이씨가 장인, 장모를 부여잡고 "한국에서도 효도하겠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것.

"지난해는 미리 연락도 없이 손자들을 데리고 이서방이 오전 1시에 찾아왔어요."

부부는 요즘도 오전 1시만 되면 대문 밖을 서성인다. 한국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하는 하루 딱 한번의 시간. 금방이라도 '어머니'라고 부르며 사위가 달려올 것만 같다고 했다.

#2. 경주시 산내면 시댁

경부고속도로 경주 요금소를 빠져나와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야 했다. 깎아지른 듯한 계곡을 따라 50여분을 달렸을까? 솟아오른 산들이 사방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산내면 내일리 마을 언덕에 티탄씨의 시댁이 있었다. 마당에는 벌써 남편 이씨가 나와 있었다. 거실에서 제기를 손질하던 티탄씨는 "우리 친할머니 제사예요"라며 인사했다. 이씨는 "아내는 모두 친할머니 친엄마라고 불러요. 사실 오늘 증조 할머니 제사예요"라고 말했다.

"정말 엄마를 만나고 오셨어요?"

티탄씨는 베트남에 다녀왔다는 취재진의 말에 반신반의하다가 부모님 모습이 생생한 영상 편지를 보고서야 믿는 눈치였다. 시어머니 김태주(67)씨와 남편, 두 딸과 거실에 나란히 앉아 화면을 응시하던 그는 어머니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오늘처럼 온 식구가 모이는 날에는 부모님 생각이 더 나요."

시어머니 김씨도 사진으로만 보아 왔던 사돈이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정정하신 사돈의 모습을 대하니 직접 뵙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시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올 겨울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베트남에 다녀올 계획을 올 초부터 세워왔기 때문. 이씨도 지난해 처갓집 공사 마무리를 미처 못 보고 와서 새집이 무척이나 궁금하다고 했다.

"장인, 장모님도 다 같은 부모 아닌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꼭 효도하겠습니다."

티탄 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없이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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