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쿠터가 달린다,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소형 스쿠터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 중구 속칭
▲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소형 스쿠터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 중구 속칭 '오토바이' 골목에 줄지어 늘어선 스쿠터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쿠터는 '철가방' 배달원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그 위상이 크게 바뀌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경제적 이동 수단이자 젊은층의 패션 아이콘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 스쿠터의 인기몰이 현장을 찾아가봤다.

◆스쿠터의 인기 질주

지난 21일 오후 대구 중구의 속칭 '오토바이 골목'. 가게마다 50~125cc 사이의 소형 스쿠터들이 줄지어 아담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명 '패션 스쿠터'라고도 불리는 이 스쿠터들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기능과 디자인을 동시에 추구하는 20, 30대들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스쿠터는 요즘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125cc 이상 오토바이 등록 대수는 지난해 말 11만2천925대에서 지난 6월 현재 11만3천732대로 9.6%(807대) 늘었다. 같은 기간 대구시 승용차 증가율(9.8%)과 맞먹는 수치. 반면 승합차와 화물차는 각각 9.9%, 9.8% 줄어들었다. 등록하지 않고도 탈 수 있는 50cc 미만 스쿠터의 판매량이 월등한 점을 감안하면 스쿠터 증가세는 훨씬 가파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희승(31) KKM 모터코리아 영업과장은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매출이 늘었다"며 "주문 맞추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창호(37) 창호모터랜드 대표는 "13년 동안 오토바이 판매점을 하면서 물건 수급 때문에 고민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승용차 홀짝제 시행 이후에 판매량이 갑자기 30%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스쿠터를 찾는 계층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주로 영업용으로 쓰이거나 대학생들이 애용했지만 요즘에는 30대 직장인과 여성들로 구매층이 확대됐다. 회사원 이선규(37)씨는 "치솟는 기름값에 고민하다가 승용차를 팔고 스쿠터를 샀다"며 "아직 운전이 서툴긴 해도 타보니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대중교통보다 비용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경제성의 미학, 스쿠터

스쿠터의 연비는 승용차보다는 월등히 높다. 50cc 스쿠터의 경우 연비가 휘발유 1ℓ당 50km를 훌쩍 넘는다. 125cc 스쿠터도 1ℓ당 30~40km 수준. 휘발유값을 2천원으로 잡았을 때 일일 평균 주행거리가 30km라면 연비가 10km인 자동차를 운전할 경우 1년간 드는 연료비는 219만원 정도인데 반해, 연비가 50km인 스쿠터를 타면 1년 연료비는 44만원으로 떨어진다. 1년 타면 스쿠터 값을 뽑는 셈. 영업사원 최모(32)씨는 "기름값 부담이 커 결국 승용차를 처분했다"며 "스쿠터는 연료탱크를 채우는데 1만원이면 충분해 한달 동안 타고다녀도 10만원이면 거뜬하고 주차비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사는 박도현(35)씨는 회사가 있는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까지 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데 40분씩 걸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출·퇴근 시간이 25분으로 줄었다. 박씨는 "길이 막히면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정체된 차량 사이를 통과해 가기도 한다"며 "아침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면 하루가 상쾌하다"고 했다.

◆안전성 문제와 불편함은 숙제

안전성 문제는 스쿠터를 타는 데 걸림돌이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시내 도로에서 스쿠터를 여유 있게 타고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학원강사 김모(27·여)씨는 애물단지가 된 스쿠터를 보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늦은 밤에 퇴근하는 탓에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스쿠터를 구입했지만 크게 다칠 뻔한 기억을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 4차로로 천천히 스쿠터를 몰고 가던 김씨 곁으로 대형 트럭이 바람을 일으키며 스쳐지나갔고, 당황한 김씨는 휘청거리며 도로변 화단으로 넘어졌다. 김씨는 "차량들이 스쿠터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위협하듯 운전을 하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만약 김씨가 사고로 크게 다쳤더라도 보상받을 길은 없었을 것이다. 50cc 스쿠터는 자동차 보험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고 등록할 필요도 없기 때문. 125cc 이상 스쿠터의 경우 등록과 책임보험가입이 의무적이지만 이마저 대물·대인 보상만 가능하고 자차·자손 보상은 받을 수 없다.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소형 스쿠터는 수납 공간이 작아 가방 하나도 제대로 넣지 못하며, 일부 모델은 수납함이 개방돼 있어 따로 돈을 내고 설치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안장이 딱딱하고 충격완충 장치가 부실해 장거리 이동 때 엉덩이와 허리 통증을 견뎌야 한다. 한 오토바이 판매점 업주는 "스쿠터를 타려면 헬멧과 장갑, 점퍼, 무릎보호대, 바지, 신발 등 기본 안전장구를 갖춰야 하지만 사람들이 헬멧 외에 거의 착용하는 경우가 없고 업주들도 굳이 권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스쿠터란?

바퀴의 지름이 보통의 오토바이보다 작고 소형엔진(50∼600cc)을 좌석 아래에 장착한 모터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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