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거일의 시사코멘트] 민족주의적 열정과 정치 지도자

정치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적 열정을 부추기고 싶은 유혹을 늘 받는다. 그것은 가장 손쉽게 정치적 이익을 보는 길이다.

문제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아주 거센 불길이어서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섣불리 그것을 일으켰다가 제어하지 못해서 자신을 태운 사람들이 많다. 민족주의적 열정을 그렇게 거세게 만드는 것은 대중의 정치 참여다. 대중은 나라의 이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나라의 명예만을 끔찍이 생각한다.

이 점은 독도 문제에서 괴롭게 드러났다. 독도의 실질적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에게 독도 문제는 나라의 명예에 관한 일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독도 문제는 풀릴 수 없다. 독도 문제를 두 나라 사이의 일상적 교섭에서 되도록 격리시켜 전반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기서 두 나라 지도자들의 역할이 긴요해진다.

이 점에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했으므로, 독도 문제와 같은 난제들은 되도록 미루는 것이 옳다. 'G8 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회담한 뒤 그가 보인 행태는 특히 실망스럽다.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와 이 대통령의 얘기가 엇갈리지만, 설령 신문 보도가 정확하다 하더라도, 후쿠다 총리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을 담은 '중학교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를 일본 정부가 공표하기로 한 일은 분명히 회담의 공식적 의제는 아니었다. 아마도 후쿠다 총리는 그 조치를 하게 된 사정을 이 대통령에게 알리면서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도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얘기하고 그런 조치를 미루어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잘못된 것은 없다. 후쿠다 총리가 그 얘기를 꺼낸 것은 이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조치에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고 이 대통령도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 얘기가 전혀 오가지 않았다면,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징후일 터이다.

잘못된 것은 후쿠다 총리가 그 얘기를 신문에 흘린 일이다. 신문에 보도되자, 의제 밖의 일에 대한 비공식적 대화는 중요한 현안에 대한 공식적 협의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런 변화는 이 대통령이 국내에서 거센 공격을 받을 틈을 열어놓았다. 만일 후쿠다 총리의 얘기가 공식적 통보였다면, 이 대통령의 반응도 공식적이었을 터이다. 신문에 보도되자, 이 대통령에 대한 배려였고 이 대통령도 그렇게 받아들인 '귀띔'이 그의 발목을 잡은 '덫'이 되었다. 큰 정치적 위험을 지면서 일본에 호의적인 정책을 고른 한국 대통령에게 일본 총리가 그렇게 잔꾀를 부린 것은 현실적으로 불행하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

아쉽게도,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저 신문의 보도를 부인했을 따름이다. 만일 그가 후쿠다 총리의 처신이 적절치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면, 그와 우리 나라의 처지가 함께 나아졌을 터이다.

이제라도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오간 얘기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신문에 흘려 신의를 저버린 일에 대해 후쿠다 총리에게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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