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추석, 놀이문화도 바꿔보자

상생'화합 정신 담은 '놀이' 통해 '염치 있는 사회' 만들어 갔으면

늦더위가 아직 그대로인데 추석은 벌써 코앞이다.

어려운 경제에 선물 꾸러미가 가벼워진 고향길, 그만큼 발걸음은 무거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돈 보다는 情(정) 때문에 오가는 한가위 귀향길은 너나없이 살갑다.

그리고 살가운 사람들은 올 추석에도 油價(유가)니 환율 같은 시름은 벗어놓고 민속놀이나 고스톱 담요 앞에서 한결 돈독해질 것이다.

어느새인가 우리의 명절 민속놀이는 세상 따라 변해가고 있다.

강강술래는 공연 무대에서나 볼 수 있고 널뛰기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런 사위어가는 추석 민속놀이 자리에 '고스톱'이 차고 앉은 지는 오래다.

놀이 문화가 라이프 스타일의 進化(진화)와 함께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그게 고스톱이든 룰렛이든 놀이문화는 시대와 문화적 감성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어 나갈 수밖에 없다.

올 추석, 우리의 놀이문화를 한번쯤 짚어보고 한 단계 더 승화된 진화를 모색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명절 보내기가 될 것 같다.

손에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올라 밤새 불을 밝힌 채 호흡을 맞춰 춤을 추고, 그래서 왜적에 勢(세)를 과시하고 침투를 감시했던 강강술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단결과 화합, 협동의 정신이 담겨있다.

'널뛰기'에는 내가 높이 오르고 싶으면 먼저 상대를 높이 올려 널바닥을 세게 차도록 도와야 하는 상생과 협동의 정신이 있다.

내 힘을 아끼려 살살 박차면 상대는 높이 오를 수 없고 나 또한 높이 오를 수 없다.

그러나 고스톱 놀이 문화에는 그런 공동체 간의 단결, 협동, 희생을 통한 相生(상생)이 적다.

속칭 '민화투'를 치던 시절의 화투문화는 정직하게 짝 맞춰 먹고 약간의 자기 運(운)에다 실력대로 따 모으면 그것으로 다였다.

잔기술이나 예외, 특권 같은 변칙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진화된 고스톱의 갖가지 변칙들은 우리 사회에 몰염치를 퍼뜨리고 특권의식을 키우고 휴머니즘을 메마르게 하며 권력지향주의적 가치관을 만들어 낸 측면이 없지 않다. 세상이 그런 변칙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판쓸이' '피박' '쓰리고' 같은 진화된 변칙들을 예 들어보자.

'판쓸이'는 다음 이웃이 먹을 것 하나 안 남겨둔 채 다 쓸어가고도 거꾸로 피 한 장씩을 뺏어간다.

서울 재벌 백화점이 덤핑으로 지방백화점 추석상품 시장을 침탈하는 것과 같다. 염치의 실종이다.

'피박' 또한 12장 넘게 피를 모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이랄 수도 있지만 실은 남의 '파이'에서 더 떼온 부익부의 권력이다.

그럼에도 피가 부족한 상대에게 곱절로 받아내는 것은 가진 자 중심의 변칙이다.

'쓰리고' 역시 잘나가는 권력과 재력을 확보하고도 곤경에 빠진 상대로부터 더 많이 뺏어가는 권력 지향적 사고를 보여준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그런 권력지향주의, 국회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 같은 특권의 변칙남용, 부익부의 자본 우위적 사고, 몰염치 등이 생활 속에 번져 있다.

그게 다 변칙 진화된 고스톱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추석, 우리의 놀이 문화에도 좀 더 건강한 변화를 생각해 보자.

피박 씌워 빼앗는 대신 나 때문에 피가 모자라게 된 남의 결핍에 대해 보답과 나눔의 마음으로 2장씩 되레 나눠주는 규칙의 진화는 어떨까? 선진국의 기부문화가 그런 것이다.

먹을 것 없이 쓸어버리고도 뺏어가는 몰염치 대신 미안한 마음으로 자기 패에서 2장쯤 뽑아 되깔아주는 '판쓸이'의 규칙 진화도 염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올해도 4천만이 즐길 추석 고스톱판에 閑談(한담) 삼아 던져본 소리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를….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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