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달서구 두류2동 반고개 인근의 '할매국시'집.
골목길을 조금 따라 들어가 가게 입구로 들어서자 구수한 멸치 국물 냄새가 손님들을 맞았다. 6단짜리 신발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120㎡ 규모의 그리 크지 않은 식당. 식탁마다 미리 나온 겉절이 김치로 허기를 달래며 국수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주방도 분주했다. 한쪽에선 가마솥에서 우려낸 멸치국물을 그릇마다 붓느라 바빴고 다른 쪽에서는 노릇하게 익은 해물파전을 뒤집느라 바빴다.
60, 70대 할머니 12명이 개업한 국숫집이 창업 1년 만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할매국시집은 '달서 시니어클럽'이 지난해 노인의 날(10월 2일)을 맞아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연 가게. 시니어클럽은 인테리어비와 보증금 등 3천만원을 지원해주는 대신 조리·서빙 등 식당 운영은 창업에 자원한 할머니 12명에게 맡겼다.
할매국시집은 매일 점심시간 30분 전부터 할머니들의 손맛을 보려는 인근 직장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잔치국수, 칼국수, 해물국수, 해물파전, 부추전이 주메뉴이고 음식값도 3천∼4천원으로 저렴하다. 직장인 이모(44)씨는 "12시가 되자마자 달려와도 기다리기 일쑤"라며 "호주머니가 가벼운 날에는 더더욱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구수한 손맛에 배불러 못 먹을 때까지 주는 '무한 리필'도 장점이다.
할매국시에는 12명의 할머니들이 6명씩 격일로 출근한다. 모두가 주인이면서 종업원이다. 홀서빙, 조리, 계산대 등 역할만 나눴다. 수익은 월세 40만원을 제하고 12명이 똑같이 월급제로 나눠 갖는다. 개인당 30만원이 조금 안 된다고 한다.
할매국시집이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다. 손님보다 주방 할머니들이 더 많은 날도 부지기수였다. 개업 초에는 '국수맛이 어제하고 다르다'는 핀잔도 받기 일쑤였다. 서로 다른 할머니 주방장이 격일로 조리를 한 탓이었다. 주방장인 오희순(61)씨와 윤태순(61)씨는 "하루에도 몇 그릇씩 각자 만든 국수맛을 번갈아 봐 가며 간을 조절했다"며 "신물이 넘어올 정도였다"고 웃었다.
개업 초 할머니들은 오전 8시부터 홍보 전단지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점심시간에도 발이 닳도록 전단지를 돌렸다. 시니어클럽의 소개로 특급호텔 주방장한테서 요리 강의도 받았고,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마련한 마케팅 전략 컨설팅 수업까지 들었다.
할머니들끼리 모인 탓에 웃지 못할 사연도 많다. 달서시니어클럽에서 파견한 식당 운영 경력 10년차의 매니저 최미숙(42·여)씨는 별명이 '마요네즈'다. 매니저란 영어 발음이 서툰 할머니들이 최씨를 마요네즈라고 잘못 부른 게 시작이었다. 최씨는 "자꾸 마요네즈를 찾기에 슈퍼마켓에서 마요네즈를 사 드린 적도 있다"며 "할머니들의 열성이 있었기에 지금 이 가게가 있다"고 치켜세웠다.
10년 전 화장대에 넣어뒀던 빨간 립스틱을 다시 꺼냈다는 유한우(71) 할머니. "집에서 할 일 없이 쉬고 있었는데 국수 가게에 출근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즐겁지." 환한 웃음을 짓는 할머니의 얼굴은 취업난에 찌든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