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 더 하겠다" 외치던 지방의회, 1인당 조례 발의 1건도 안돼

[지방의회 현주소는?] (상)빈약한 성적표

의정비 인상 문제로 갈등을 겪은 지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기초의회 의원들은 "의정비 확대가 당장은 지방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인상의 근거로 들었다.

이 변명에 주민들은 동의해 주지 않았다. 대구 한 구청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민의 78.8%가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내놨다. 하지만 의원들은 스스로의 월급을 높이는 조례에 방망이를 두드렸다.

기초의원들이 스스로 공언했던 것처럼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책임성은 과연 얼마나 높아졌을까?

◆제멋대로 의정비 인상=지난해 대구지역 기초의원들은 1인당 평균 181만원의 의정비 인상을 단행, 평균 3천199만원의 연봉을 받기로 했다.

물론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남구는 2천829만원으로 동결된 반면 동구는 12.4%(369만원)를 인상한 3천345만원을 의결했으며, 서구도 9.8%(261만원)를 올려 2천916만원의 의정비를 받기로 했다. 대구에서 가장 많은 의정비를 받고 있는 곳은 달서구로 무려 3천552만원을 받고 있다. 달성군이 3천417만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의정비 인상에 동의한 적이 없다. 동의는커녕 삭감 내지는 동결이라는 주민의사를 설문조사를 통해 표현했음에도 각 의회는 이를 무시하고 의정비 인상을 단행했다.

서구에선 2008년 서구의회 의원의 적정 의정비 수준으로 '2천만원 이상~2천50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절반(47.8%)에 달해 의정비를 더 삭감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달서구에서도 3천360만원을 받고 있던 달서구의원 의정비에 대해 주민 55.4%가 '많다'고 응답했다.

의정비 논란은 또다시 재개될 움직임이다. 지난 8월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대구의 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금액을 의정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기 때문. 달성군을 제외하고는 적게는 9만원에서 많게는 529만원까지 더 높았다. 시민들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또다시 의회가 의정비 인상을 꾀하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우려 섞인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돈만 받고 일은 뭘 했나?=의정비 인상을 둘러싼 의원들의 각종 변명이 '공수표'였다는 사실은 조례발의 건수만으로도 쉽사리 확인된다.

제5대 의회가 시작된 2006년 7월부터 현재까지(2년 2개월) 대구지역 기초의원 116명의 조례발의 건수는 166건에 불과하다. 의원 1인당 연간 발의 건수는 0.65건. 시민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뭘 했나'라는 비난의 소리가 나올 법하다. 의원 수가 16명인 동구의회는 지금껏 고작 13건의 의원조례를 발의, 의원 1명당 연간 0.46건이라는 최저 기록을 세웠다.

조례 발의의 질도 수준 이하다. 주민생활과 관련 없는 의회 내부 관련 일부개정조례안이 57%(166건 중 95건)를 차지했다. 심지어 중구의회는 지금껏 발의한 18건의 조례 중 18건 모두를 의회 업무와 관련된 것들로만 채웠다. 단 한건도 주민을 위한 조례 발의는 없었다.

다른 자치단체의 조례를 빌려오거나, 상위법 및 대구시 조례안의 규정을 일부 발췌해 그럴듯하게 포장만 한 조례들까지 모두 제외시킨다면 사실상 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재향군인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조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보상에 관한 조례, 공동주택 관리비용 지원에 관한 조례 등은 거의 대부분 구·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일부 기초의회는 눈에 띌 만한 조례안을 내놓았다. 금호강을 끼고 있는 북구는 '수변안전 취약구역 구명환 설치에 관한 조례안' 등을 내놨으며, 어린이공원 60여곳과 학교 정화구역을 금연 권장지역으로 규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또 달서구의회는 노인문화대학 및 노인복지대학 설치·운영 조례를 만들어 달서구 지역 노인들의 여가생활 문화 정착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경북지역 기초의회도 의정비만 인상했지 별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북도 내 23개 시군 기초의회의 조례 발의건수를 통해 의원들 활동상을 들여다보면 "돈만 받았지 도대체 뭘 했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발의한 조례의 질도 수준 이하로 평가받고 있다.

◆조례 발의 건수=제5대 의회가 시작된 2006년 7월부터 지난 9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도내 23개 시군의회 의원 281명이 발의한 조례는 158건으로, 의원 한명당 평균 0.56건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전국 기초의원 한명당 평균(0.7건·2008 지방의원 의정비 자료)을 밑도는 수치로, 지역 의원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특히 의원 9명을 둔 예천군의회는 단 한건의 조례도 제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기본책무인 조례 발의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의원 한명당 평균 1건 이상의 조례를 발의한 곳은 울릉군(2.29건), 구미시(1.17건), 청도군(1.14건), 의성·청송군(1건) 등 5곳뿐이었다.

◆조례 발의 백태=안동시의회는 9건의 조례를 제정했으나 임상근 의원이 3건, 손광영·성숙현 의원이 각 2건, 김정년·정홍식 의원이 각 1건씩 발의해 나머지 13명의 의원들은 실적이 전무했다. 조례 개정 발의도 9건이지만 손광영·이숙희·성숙현 의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7명의 고령군의회 의원은 2006년 3건, 2007년 1건 등 모두 4건을 발의했으나 개정안이 3건으로, 제정안은 1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의정활동비 지급 등에 관한 조례개정안과 군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에 관한 조례안 등 자신들 업무와 관련한 것들뿐, 주민을 위한 조례안은 한건도 없다.

경주시의회에서도 21명 가운데 조례 발의를 한 의원은 이상득·이진락·강익수·정용식 의원 등 4명뿐이다. 구미시의회는 한명당 평균 1.17건으로 경북 평균보다 높았지만 조례안을 살펴보면 ▷구미시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조례안 ▷시의회 정례회의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 ▷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구성 등에 관한 규칙안 등 의회 관련 조례와 상위법에 의해 반드시 개정해야 할 안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시민 생활과 직결된 조례는 ▷저소득계층 국민건강보험료 지원 조례안 ▷농업·농촌 발전 지원 조례안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 등 5, 6건에 불과했다.

울진군의회 의원들은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 '울진 화장장 장례금 지원' 등 6건의 조례안을 이달 말쯤 임시회를 열어 상정하기로 했다. 예천군의회도 비난을 의식, 올 연말 정기회에서 2, 3건의 의원발의 조례 제정을 계획하고 있다.

◆시민 반응과 의원들의 주장=이 같은 의원들의 활동상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의회 무용론' 등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울진군의 한 주민은 "의원들이 주민 생활보다는 잿밥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면서 "시민단체를 구성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평가, 다음 선거에 (유권자들이)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울릉군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좁은 지역에서 기초의원까지 뽑는 선거판 때문에 지역민들 사이에서 편 가르기만 벌어졌다"며 기초의회 무용론을 주장했으며, 한 경주시민은 "5대 의회에 전문직군들이 있어 과거와는 다른 활동을 기대했는데 역시 수준 이하였다"고 꼬집었다.

영주시민 이모(43)씨는 "의원들의 전문성과 책임성 있는 의정활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당제에서 봉급제로 전환했지만 사실상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공부하고 노력하는 몇몇 의원들의 올바른 의원상이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구미시의회 한 초선의원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의회운영 등 전반적인 문제 파악에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며 "이제야 겨우 의정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조금만 기다려 준다면 시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정활동을 펼쳐 지역발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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