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커진 미국의 금융 위기는 '구제안'이 하원에서 부결됨으로써 더욱 커졌다. 지금은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만간 이번 공황은 가라앉을 것이다. 공황은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만, 오래 가지는 않는다. 불행하게도, 이번 위기가 수습되는 데엔 훨씬 오래 걸릴 터이다.
이번 위기는 위험 관리가 허술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새로운 위험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 과제는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위기는 미국 중앙은행이 경기를 떠받치려고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한 데서 비롯했다. 금리가 낮으니, 사람들은 빚을 내어 소비를 늘리고 집을 샀다. 거품이 꺼지자, 집을 담보로 대출한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보았고, 금융시장이 갑자기 위축됐다.
미국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는 징조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은행은 그런 징조를 무시했다. 경기가 좋을 때, 과열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물론 거센 비난을 받는다.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억지로 되살리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 즉 그들의 정책엔 내재적 편향이 있다. 그래서 시장의 기능을 통해서 작은 몸살들을 앓고 끝났을 일이 중앙은행의 영양제 처방을 통해서 중병으로 이어졌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품은 내재적 편향은 잘 인식되지 않지만 아주 큰 위험이다. 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파생금융상품(financial derivative)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금융 기업들의 상호의존도를 크게 늘렸다. 파생금융상품은 유가증권이지만 독자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것의 가치는 상품이나 증권 또는 통화와 같은 다른 본원적 자산의 가치로부터 파생된다. 파생금융상품은 원래 위험에 대비하는 연계매매(hedging)에 쓰이도록 고안되었는데, 이번에는 투기에 이용되어 오히려 금융시장 전체가 맞은 위험의 폭을 늘렸다. 따라서 파생금융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먼저, 기업의 차원에선 최고경영자가 파생금융으로 기업이 지는 위험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그런 위험을 제대로 아는 최고경영자는 너무 드물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주 어려운 수학을 써서 마련된 파생금융상품들의 위험을 모른 채, 그저 수익이 많아지니, 그대로 둔 것이었다. 그 점에서 이번 위기로 도산한 금융 기업들은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을 낸 '불량 거래자(rogue dealer)'를 방치했다가 도산한 금융 기업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금융시장의 차원에서도 파생금융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체계가 어떤 모습을 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파생금융을 규제하는 방안을 생각하면, 뚜렷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방안은 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서 진화할 것이다.
현대의 파생금융상품들은 잠재적 가치가 크다. 그것들은 시장의 진화에서 나온 산물이자 시장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존재다. 당장은 모두에게 큰 괴로움을 주겠지만, 길게 보면, 이번 위기는 시장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미국식 자유방임주의가 실패했다거나 경제적 자유주의가 근거를 많이 잃었다는 진단은 그런 사정을 읽지 못한 데서 나왔다. 확실한 것은 시장이 계속 진화하리라는 사실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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