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味의 산실 대구]우리나라 레스토랑의 역사

레스토랑(Restaurant)이란 프랑스 대백과사전의 'de Restaurer'에서 유래됐으며 "기력을 회복시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식당이라는 말을 우리의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식사하기에 편하게 설비해 놓은 방',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식당이라는 개념의 우리나라의 기록은 고려 성종2년(서기 983년) '개성에 주막 6개를 개설하였다'라는 기록이 최초이다. 이 기록을 보면 고려 이전에 이미 주막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 왔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막은 대중적인 숙식을 제공하는 현대적 의미의 호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숙박과 고급음식, 그리고 술을 함께 판매한 기방(妓房)이 있었다.

조선시대 말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서양식 요리를 판매하기 시작한 식당은 1885년 러시아 한국공사로 부임한 웨베르(Waber)의 처형인 손탁이라는 여성이 건립한 '손탁호텔'로 이 호텔의 2층은 황실의 귀빈을 모시는 객실로, 1층은 보조객실·식당·회의실 등으로 사용했다. 레스토랑은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판매하는 현대적 레스토랑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손탁은 독일 출신으로, 혈통은 프랑스인이며 활동무대는 제정 러시아였다. 손탁호텔은 우리나라 전통객사에서 벗어나 서구식 건축과 가구, 장식품, 요리가 서양식으로 제공된 최초의 서구양식의 시설로, 우리나라의 호텔 및 식당사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손탁호텔 개업 이후부터 우리나라 호텔의 서양식 레스토랑에서는 프랑스 요리를 기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시작된 서양식 음식의 종류와 서빙 형태 등은 이후 생겨나기 시작한 호텔 및 일반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스타일을 따라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1905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존슨톤의 '인천각'등 외국인에 의해 호텔 및 레스토랑이 건립되는 등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레스토랑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 호텔 및 레스토랑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이용했고 특히 무역의 중심지였던 인천에 외국의 실업가나 상인들이 체류할 신식 여관이 없어 외화벌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장홍식(일제 강점기의 금융인)은 "여관의 제도를 완비함은 자못 외국인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상 기관과 외교상 수단을 위함이로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굴뚝 없는 기업'이라 말하며 관광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까닭과 맥을 같이 한다. 이후 국민소득 증대와 함께 여가생활 즐기기, 일상생활의 글로벌화 등으로 음식에 대한 기호의 변화로 새로운 형태의 서양식이 등장하는 등 외식문화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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