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빌려준 돈은 못 받아도 좋아요. 정말 어려운 집입니다. 꼭 도와주세요."
이달 초 40대 주부라는 한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도 170만원을 빌려줬지만 "안 받아도 상관없다"며 "그만큼 어려우니 꼭 '이웃사랑'을 통해 도움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독자의 말을 좇아 21일 밤 경북 구미시 원평동 김성문(45)씨의 집을 찾았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사글세집은 2층에 있었다. 헤진 방충망이 달린 여닫이 문을 열자 부인 박해성(44)씨와 아들 영진(가명·16)군이 인사를 건넸다.
"앞이 안 보여서요. 죄송하지만 나가서 인사를 할 수 없었어요."
많이 부은 것 같아 보이는 박씨는 얼굴을 가까이 해도 '내 앞에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분간밖에 안된다고 했다. '잘 생긴 아들'의 얼굴도 이젠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고 했다.
박씨는 10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왔다고 했다. 시력이 나빠진 것은 6년 전부터. 3년 전 찾은 병원에서는 "안경을 써도 소용이 없다"고 판정했다. 남편이나 아들의 도움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졌다. 이런 박씨에게 2년 전 신부전증마저 찾아들었다. 혈액 투석을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가야 한다. 투석에만 4시간가량 걸린다.
때문에 전기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김씨이지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김씨는 "출장이 잦은 전기 업무의 특성상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며 아내를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용직 일거리라도 얻으러 공사장을 찾지만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일감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3개월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월 27만원을 정부에서 받고 병원비 부담도 줄어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 분기별로 아들 앞으로 나오는 17만원의 공납금도 생활비로 돌리기 일쑤다.
영진이는 의외로 이런 가족의 생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비를 포함해 하루 용돈 4천원. 오전 6시 50분쯤 집을 나서 인근 가게에서 1천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고, 좌석버스 왕복 비용 2천200원을 제하면 남는 돈은 고작 800원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 차비와 밥값으로 3천300원을 빌렸는데 1주일 뒤에 갚았어요. 가난하다는 건 좀 불편한 것뿐이죠. 엄마 아빠가 곁에 계시는데 맨밥에 김치라도 감사해야죠."
아들의 이야기를 듣던 김씨는 결국 닭똥같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두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물을 내리는 소리에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에도 돈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고 했다. 4, 5년 전 일했던 곳의 업주를 찾아나선 길이었다.
"받아야 할 임금을 못 받아서 서울로 갔지요. 100만원 정도 되는 돈인데 우선 4개월 밀린 방세라도 해결해야 하니까요."
무작정 올라간 서울행에서 건진 건 없었다. 업주를 만나지도 못했다. 붉어진 두 눈을 감싸며 얼굴을 쓸어내리는 김씨의 두 손에는 주부습진의 흔적도 보였다.
혈액 순환이 잘 안되는 박씨는 자기 전이면 손가락 끝이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김씨 부자는 박씨가 잠들 때까지 손을 주물러야 한다고 했다. 영진이는 "길어야 10~20분인데 힘들 게 있나요"라고 했다. 오히려 "엄마가 금방 잠들어 고맙다. 또 영원히 잠들지 않아 더 고맙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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