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권은 여건상 시급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은행과 최종적으로 이야기하고 필요하다면 여·야당과도 협의를 한 뒤 10만원권 발행 여부를 연말까지 결정하겠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10만원권은 도안 문제로 한 달 전부터 제작을 중단한 상태다.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분리해서 발권할 수도 있다. 오는 12월에는 구체적인 시제품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늦어도 그때(12월초)까지는 구체적으로 결정을 하겠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화폐발행과 관련해 권한이 있는 두 기관의 수장이 입을 열었다. 강만수 장관과 이성태 총재는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고액권 발행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서 위와 같이 밝혔다. 두 사람의 발언은 바로 큰 논란이 됐다. 내년 상반기 중에 시중유통할 예정이던 고액권(5만·10만원권) 제작 과정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 대상은 10만원권으로, 뒷면에 보조 소재로 쓰이게 될 '대동여지도'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추진된 고액권 발행은 인물 초상화 문제로도 숱한 논란을 겪었다. 현재 10만원권 발행은 어떻게 돼가고 있으며 대동여지도를 둘러싼 논쟁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원론만 있고 진척은 없어
한국은행에 확인한 바로는 국감 현장에서 두 수장의 발언 이후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 이 총재의 말대로 10만원권의 제작이 중단돼 있을 뿐이다. 이승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장은 10만원권 제작중단과 무기한 유보 사안에 대한 질문에서 "확정된 건 아니다.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것도 없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대동여지도 사용 여부도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강 장관의 발언 요지도 '무기한 유보를 검토해서 한국은행에 요청하겠다'라는 설명.
도안을 둘러싼 정치적인 논쟁에다 최근 경제 불안까지 겹치면서 10만원권 발행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액권 시제품 공개 예정 시점은 12월. 그러나 이 총재는 앞서 발언에서 '5만원과 10만원권 분리 발권 가능성'을 언급했다. 10만원권이 내년 상반기에 발행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간접 시사한 말이다. 이 총재가 당시 국감장에서 밝힌 대로 "내년 상반기에 발행하려면 지금도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10만원권 발행이 일정대로 추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정부나 한국은행이 대동여지도 사용이나 10만원 발행 여부에 대해 기존안을 고수한다는 가정에 의해서다. 결국, 발행 필요성 논의 단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10만원권은 발행 여부와 도안인물·보조소재 때문에 추진 여부 자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대동여지도 논란은 과연?
10만원권이 이렇게 '말 많고 탈 많은' 상태가 된 것은 대동여지도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7일 새로 발행할 10만원권 보조소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인물들과 무궁화를 앞면에,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뒷면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은이 당일부터 5일간 인터넷 홈페이지에 운영한 '국민의견 접수창구'에서 대동여지도의 부적절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다양하게 제기됐다. '대동여지도에 독도의 표기가 누락돼 일본이 영토 문제를 제기할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들이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할 때 독도가 그려지지 않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조선총독부 직인이 찍혀 있어 도안 소재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 등의 지적도 있었다.
한은도 이와 관련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보조 소재 원안을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장세근 한은 발권국장은 지난 7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19세기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 목판본에는 독도가 없지만 목판본 이전에 제작된 필사본에는 독도가 표기돼 있다. 작년 말 이 필사본을 10만원권의 보조 도안으로 쓰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이런 조치를 취했음에도 대동여지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제작중단에 발행 무기한 유보라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최선웅 매핑코리아 대표는 한은의 조처에 앞서 지난 5월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대동여지도와 10만원권)을 통해 '조선시대에 제작된 조선전도 중에 대동여지도보다 더 오래 전에 제작되고 지도사적으로도 우수한 조선전도를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은과 정부의 결정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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