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독약으로 회춘하다

늦가을입니다. 경제 상황이 어수선하다 보니 더욱 스산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달력도 이제 두 장밖에 남지 않았군요. 세월의 빠름을 실감합니다.

이번주 주말판에는 '나이 듦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뤄봤습니다. 노화와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러나 단세포 생명체들은 여기서 비껴나 있습니다. 단세포 생명체는 분열을 통해 종족을 번식하기에 죽음과 노화를 겪지 않지요. 그러나 진화 과정에서 다세포 생명체들은 분열 대신 성(sex)을 종족 보존의 수단으로 삼게 됩니다. 섹스를 통해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유전자를 교환하는 방법을 통해 자손을 낳기 시작한 것이지요. 섹스의 대가로 생명체들이 잃은 것은 불멸성이었습니다.

세포들 역시 일정 시간이 흐르면 죽습니다. 또한 전체 유기체(몸)을 위해 기꺼이 자살도 감행합니다. 그런데 세포 중엔 죽음을 거부하는 이단아가 있습니다. 이 고약한 녀석은 자신과 같은 것을 복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식탐도 엄청나 이웃 정상세포와 양분을 절대 나눠 먹는 법이 없습니다. 이단아는 바로 암세포입니다. 암세포의 이 같은 탐욕은 결국 몸 전체의 죽음을 부릅니다. 그 행세를 보니, 탐욕 때문에 세계 경제를 파탄에 빠트린 월가 금융회사들이 떠오릅니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노화는 시작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대부터 늙기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생물학적 노화와 정신적 노화 사이에는 부조화와 갭(gap)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 갭을 메우겠다며 성형외과에서 보톡스(BTX) 주사를 맞습니다. 보톡스의 원료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틀리늄'(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물질입니다. 이 물질 10억분의 1g을 물로 희석해 피부 주름 부위에 주사하는 것이지요. 보톡스는 근육수축명령을 내리는 신경세포를 마비시킵니다. 이 작용에 의해 피부 주름이 일정 기간 동안 펴지는 겁니다.

그러나 보톡스가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의 원료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햄, 소시지, 꿀 등 음식물을 밀폐된 곳에 오래 놔두면 여러 종류의 식중독균 분비물질이 생기는데 클로스트리디움 보틀리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물질은 신경과 근육 간의 정보 교환을 막고,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마비시킵니다. 그 치명성은 여느 독극물하고 비교를 불허합니다. 단 1g만으로 100만명 이상을 죽일 수 있다는군요. 인류 최악의 생화학 무기가 역설적이게도 젊음의 묘약으로 변신해, 여성들을 유혹하는 상황이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늙어보인다는 것이 피부 주름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인간의 눈은 다른 사람의 나이대를 단번에 알아맞히는 변별능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주름을 파악할 수 없으리만큼 멀리 있는 사람의 모습만 보고도 말입니다. 이는 사람의 뇌가 나이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피부 주름뿐 아니라, 얼굴모양·체형·복장 등 복합적인 시각적 데이터를 함께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보톡스 다림질'을 한다 해도 늙음을 다 숨길 순 없는 겁니다.

이번주 '인물+'난에는 창원에서 수행공동체를 운영하는 명상가 김병채 창원대 교수를 만나 보았습니다. 취재기자에 따르면 그는 오히려 평범해 보였고 잘 웃었으며 다감했다고 합니다. 반박귀진(反樸歸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지를 이룬 고수는 오히려 일반인과 구분 안 된다는 뜻이지요.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닌가 얼추 짐작해봅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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