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마다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 특히 지금껏 대형 프로젝트를 벌이면서 대부분 지방채 발행, 즉 빚을 내서 사업을 벌여온 지자체는 치솟는 이자율에 줄어든 지방세 수입, 게다가 중앙정부의 감세 정책까지 겹치며 내년도 예산 확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대구는 도시 재정력을 바탕으로 정해지는 지방채 발행규모를 볼 때 인천에 비해 4분의 1에 그친다. 빚을 내서 빚을 갚는 형국인데 이런 능력마저 한계에 부딪친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자체 재정이 빠듯해지면 관급공사 물량이 줄게 되고, 결국 가뜩이나 가라앉은 지방 경제를 회복시킬 최소한의 투자도 이뤄지지 않게 된다.
◆대구시의 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대구시가 진 빚은 2조7천676억원. 250만 인구로 나눠보면 71만4천여원으로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1위이다. 2위인 부산(62만9천여원)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 광역시 중 가장 적은 대전의 35만4천여원에 비하면 2배나 높다. 지난해 7월 나온 대구시에 대한 '기업형 재무보고서'를 보면 총자산이 25조9천억여원에 이르는 만큼 재산 대비 빚 규모로만 따져보면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오죽하면 지난 국정감사에서 대구시의 '빚'이 도마에 올랐을까. 먼저 지하철 부채 규모만 1조4천931억원으로 전체 빚의 54%에 육박한다. 게다가 이 빚은 늘어만 간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갚은 지하철 부채만 1조7천142억원. 문제는 이 돈이 국비 지원이나 지방 재원을 통해 갚은 것이 아니라 지방채 발행, 즉 다시 빚을 내서 빚을 갚았다는 뜻이다. 빚을 내려면 당연히 이자를 내야 하는 법. 이자 상환액만 2000년 654억원, 2007년 737억원 등 8년 간 합쳐서 무려 6천79억원에 이른다. 빚을 내고 값 비싼 이자까지 치르고 있지만 지하철 부채는 2000년 1조420억원에서 오히려 늘어만 가는 형국이다.
대구시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지하철의 경우, 영업손실이 누적되는데다 신규 사업을 계속 벌이고 있기 때문에 지방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2005년 2조8천억원대에 이르던 부채 규모를 꾸준히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대구스타디움(옛 대구월드컵경기장) 적자도 매년 30억원씩 쌓이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구스타디움은 2007년까지 182억원 적자를 냈다. 부지면적이 2배 정도나 큰 울산 문수월드컵 경기장의 적자는 79억원이었다.
◆이미 재정 압박은 시작?
'빚도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빚이 많은 게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빚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이 됨을 뜻한다. 재무건전성을 따지고 담보 제공여부를 따져서 금융기관은 기업에 돈을 빌려준다. 지방채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별 재정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지방채 발행규모가 정해지는데,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바에 따르면 대구시의 2009년 지방채 발행가능 총액은 646억원에 그쳤다. 서울은 1조2천450억원, 부산은 1천44억원, 인천은 2천710억원이나 된다. 부산의 60%선, 인천의 23%선에 불과하다.
한 지방행정 전문가는 "빚을 내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재정구조상 지방세와 중앙정부 교부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로서는 지방채 발행은 자금을 조달할 주요 통로"라며 "이런 점에서 대구시는 이미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돈이 없다 보니 돈을 받아오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지하철 부채가 그렇다. 재정이 열악한 대구시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전체 국비 지원액 3천597억원 중 182억원밖에 받아오지 못했다. 대구시가 100억원을 내면 23억원을 중앙정부가 내는 이른바 '매칭펀드' 방식인데, 대구시 돈이 없다 보니 중앙정부도 돈을 못 대주겠다는 식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하철 부채 문제는 대통령 공약도 있고, 다른 지자체와의 지원액 차이도 큰 만큼 조만간 어떻게든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에 돈이 없다 보니 신규 사업 중 굵직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민자 유치에 의존하고 있다. 대구 돔야구장 건설을 위해 시가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3천억원이 넘는 워낙 거대한 사업인데다 경기침체까지 맞물려 여의치 않다. 도로 건설 역시 민자 사업이 이미 시작됐지만 잘못된 교통수요 예측 탓에 매년 재정지원금만 늘고 있다. 당장 범안로의 경우, 지난해까지 300억원 넘게 지원됐고 이후 3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됐다.
◆외국 지자체들은 이미 파산 위험
지난 20일 대구시 국정감사장에서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은 '파산'이라는 용어를 썼다. "1975년 뉴욕시가 파산 직전이었다. 1980년대 영국 지자체도 그랬다. 대구의 부채가 3조원에 가깝다."
가깝게 보면 지난 2006년 6월 파산을 선언한 일본 훗카이도 유바리시가 있다. 탄광도시로 번성하던 유바리시는 1990년대 폐광 이후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게 관광산업을 추진하다가 360억엔까지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2007년부터 20년간 빚을 갚도록 했고, 이후 뼈를 깎는 고통이 시작됐다. 당장 시청 공무원 270명을 4년간 70명으로 줄이고, 급여도 30~60%씩 삭감했다. 시민 고통도 컸다. 소방본부 구급차가 줄었고, 자녀 보육료가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주민세, 자동차세, 하수도 요금도 올랐고 시내버스 경로 우대가 없어졌으며 지자체가 재정 지원을 해오던 초·중학교도 단계적으로 통폐합될 운명에 놓였다.
뉴욕발 금융위기의 공포는 미국 지방정부에도 심각한 타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가 32억달러에 이르는 지방채 이자 8천350만달러를 갚지 못해 채권단과 협상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협상 결렬에 대비해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1994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가 16억달러의 투자 손실 때문에 파산했다. 미국 지방채 규모는 2조6천억달러 규모로 최근 금리가 4배 가량 치솟으면서 지방정부는 이자조차 갚지 못해 허덕대고 있다. 싼 이자의 지방채 시장은 이미 끝난 셈이다.
◆우리나라 지자체 파산 가능성은?
경일대 문인수 교수는 이미 1998년 '지방자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자체 파산'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지방재정 체계 하에서 지자체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대책없이 바라볼 상황만은 아니다"고 했다. 한 행정학 전문가는 "여전히 지자체 단체장들은 재임 기간 중 업적을 이루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고 공무원 조직 구조조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라고 해서 지자체 파산이 없으라는 법이 없다"고 했다.
지난 국감에서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은 "대구시가 심각한 부채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구시는 지하철 건설 당시 낮았던 국비 지원분을 소급해 받고, 장기적으로 지하철 부채를 부산처럼 국가가 떠맡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말 총부채액이 3천474억원에 이르는 대구도시공사는 사장 연봉을 12.5%나 인상해서 8천600만원으로 책정했으며, 지하철공사도 적자 속에 기관 인센티브를 꾸준히 올렸다.
대구외국어대학 이영조 총장은 "중앙정부의 지원액은 한정돼 있고, 지방채 발행규모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현재처럼 경기가 어려워져서 지방세 수입마저 감소한다면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가령 현재처럼 지방채를 발행해서 지방채 이자를 갚아 나가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것이 파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총장은 또 "일반 기업은 상법상 부도처리가 가능하지만 현재 지자체는 이와 관련된 법도 없고 따라서 이를 책임질 사람도 없는 만큼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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