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007 제임스 본드가 해체됐다.
제임스 본드는 남성적 캐릭터(숀 코너리)에서 달콤한 스파이(로저 무어)로 넘어와, 한때 고민하는 첩보원(티모시 달튼)으로 휘청하더니, 다시 낭만 스파이(피어스 브로스넌)로 넘어왔었다.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르기까지 46년간 007은 시대에 맞춰 캐릭터의 밑그림들이 바뀌어왔다.
그러나 22편 '007 퀀텀 오브 솔라스'(감독 마크 포스터)는 전통적 이미지들과 형식에서 완전히 탈피됐다.
기존의 007 영화는 건바렐(본드가 돌아서 총을 쏘면 화면이 피로 물드는 오프닝)로 시작되어 강력한 티즈(맛보기) 액션이 이어지고 주제곡과 함께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가는 순서였다. 그러나 건바렐은 약하게 오프닝타이틀 앞에 붙었다. 또 007 영화의 특징인 신무기도 등장하지 않고, 본드걸의 존재도 밋밋한 동업자 정도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큰 것은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이다.
그는 살인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살인면허증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뭘 하는 존재인가. 달콤한 낭만은 사라지고, 냉혹한 음모 속에 던져져,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복수의 칼날을 가는 남자이다. 조직인 MI6와도 끊임없이 갈등한다. 따라서 고혹적인 여인이 "누구?"라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던 예전의 모습은 없어졌다.
'퀀텀 오브 솔라스'는 희한하게 전편인 '카지노 로열'의 1시간 뒤라는 설정을 가지고 출발한다. 이제까지 시리즈는 철저히 독립된 에피소드였다.
자신을 배신했던 사랑하는 여인 베스퍼를 배후 조종한 미스터 화이트를 잡아오는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하지만 M(주디 덴치)과 함께 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더 큰 조직인 '퀀텀'이 뒤를 받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MI6 내부에까지 그들의 스파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본드는 '퀀텀'의 배후를 파헤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조직의 우두머리인 그린(마티유 아말릭)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복권을 꿈꾸는 독재자 메드라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카밀(올가 쿠릴렌코)과 힘을 합친다. 둘은 자원의 보고인 남미를 확보해 천연 자원을 모두 독차지하려는 그린의 음모에 맞서 싸운다.
가장 볼거리는 2억2천만달러로 만들어진 액션들이다. 영화는 자동차 바퀴의 찢어질 듯한 마찰음으로 시작한다. 절벽이 맞닿은 좁은 길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앞 뒤, 바퀴와 핸들,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발 등을 빠르게 편집해 긴박감을 준다. 건물 지붕을 건너뛰는 액션과 천정에 매달린 줄에서 펼치는 격투 등은 육중한 사운드와 함께 실감난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작품인 '카지노 로열'과 비교했을 때는 완성도에서 미흡한 느낌을 받는다. 선(先) 액션 후(後)드라마도 어정쩡하고, 세세한 액션보다 오히려 돈을 들인 큰 액션의 감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마지막 호텔의 액션도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평이해 임팩트가 떨어진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아날로그 실감 액션은 이미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한 본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들이다. 시리즈의 장점들이 사라진 '퀀텀 오브 솔라스'는 화려한 과거의 영화(榮華) 뒤에서 몸부림치지만, 그것이 썩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06분.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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