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림프종 앓는 구미 방경우씨

"암 투병보다 아이들 생각에 눈물만 납니다"

▲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애들 덕분
▲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애들 덕분"이라며 정혁, 정희 두 남매를 끌어안는 방경우(43)씨는 면역력이 떨어져 모든 걸 따로 써야 한다. 수건, 비누는 물론 음식도 따로 먹어야한다. 그 때문에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지 못하는 것도 방씨에겐 괴로움이다. 김태진기자

'아빠, 병원 가지 마세요. 아프지 마세요'

일곱살 정희는 한글을 배우자마자 제일 먼저 이 말부터 썼다.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에는 간단한 그림도 곁들여져 있었다. 병원과 약, 그리고 병원보다 훨씬 크게 그린 아빠 방경우(43)씨의 얼굴.

17일 오후 찾은 경북 구미시 임오동 방씨의 집은 환자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혈액종양의 일종인 림프종을 앓으며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 아들 방씨를 위한 어머니 정금순(78)씨의 작품이었다.

방씨는 2년 전까지 염색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하지만 10년 동안 일했던 염색공장이 2006년 6월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됐다. 공장 사택에서 나왔지만 회사 동료 연대보증을 서는 바람에 전세방 구할 돈도 쥐지 못한 것. 6개월간 받은 실업급여는 고스란히 6세, 5세이던 정혁, 정희 남매 밑으로 들어가야 했다.

"감기인줄 알았지요. 아주 지독한…."

방씨가 병을 알게 된 건 그해 12월. 새 직장을 얻어 일을 시작해야 할 즈음 방씨는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일할 곳을 찾아다니는 대신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지독한 감기'가 도대체 무슨 병인지 몰라서였다. 막연한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운동을 좋아하고 움직여 땀흘리는 데서 삶의 즐거움을 찾았던 자신에게 혈액종양이 찾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듬해부터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73kg이던 몸무게는 54kg으로 줄었다.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걸핏하면 구토를 했다. 김치조차 먹기 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두 아이에게 아빠는 여전히 강하고 큰 존재였기 때문이다.

6개월의 항암치료를 어느 정도 이겨낸 뒤 지난해 7월부터는 집에서 지내고 있다. 2주 전에는 큰맘 먹고 1학년인 정혁이의 학예회를 보러 학교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문제가 만만찮다. 병의 경과를 알아보기 위해 들여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 한번에 70만원이 드는데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싼 병이 없다'는 방씨는 자신의 죽음보다 그 뒤에 남은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 두렵다며 소리죽여 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짜증을 내고 별일도 아닌데 혼내고 있는 내 모습이 답답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금방 잊어줘서 고마워요. 벌써 철이 들어가는건지."

아이들을 안아주고 나면 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가려워진다는 방씨. 가려운 게 대수냐며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힘껏 안는다. 두 아이를 꽉 껴안은 방씨의 이마에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꽉 안은 두 팔은 가늘었지만 뼛속 깊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박힌 듯 보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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