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舌禍

세상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로 시끄러웠을 때 당시 80세였던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이 流彈(유탄)을 맞았다. 40년 전 여성과의 성관계가 언론에 폭로된 것이다. 흥분한 하이드가 "40년 전 철이 없었을 때 일을 들추어낸다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 한마디 했다. 그게 禍根(화근)이 됐다. "40년 전이면 나이 40인데 철이 안 들었다면 도대체 언제 철이 드나?" 그는 결국 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경망스런 말로 곧잘 술판에 안주를 제공하고 있다. 舌禍(설화)로 발전하는 실언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찍지마, ××' 막말은 그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은 참으로 위험하고 어처구니없는 妄言(망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관이 국가적 중대사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헌재와 '접촉'했다는 말 아닌가. 장관이 헌재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거나 헌재가 사전에 결정 내용을 알려줬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말이다. 無知(무지)에서였든 자신감에서였든 강 장관의 도를 넘어선 '접촉'으로 헌재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예쁜 선생님' 발언이 또 불거졌다. 지방에서 열린 여성지도자 총회에서 강연하면서였다. 나 의원은 "시중 우스개를 전한 것"이라 해명했다.

시경에 구슬은 상처가 나면 다시 갈면 되지만 말은 한 번 해버리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며 신중히 하라고 경계한다. 말해야 할 때가 있으며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퇴계 선생은 제자들의 쉬운 질문에도 뜸을 들여 신중히 답했다고 한다.

명연설가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좀처럼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우스개도 하지 않는다. 부시 현 대통령이 잦은 말실수로 코미디의 소재가 됐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정치인들의 감정을 감추지 않은 원색적 표현에는 순진함보다 미숙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서는 어떤 향기도 여유도 느낄 수 없다. 그들의 실수를 여유롭게 받아넘기지 못하는 우리의 狹量(협량)이 문제인가? 볼기라도 쳐주고 싶다.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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