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또다시 대입

20여 년 전에도 그랬다. 앞으로 내신반영이 더 많아질 것이다. 혹은 내신이 아닌 시험이 더 중요하다 등. 지금이나 그때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수능시험이 며칠 전 치러졌기에 잠시 개인적인 과거사를 뒤적이게 된다.

당초 치대 지망생이었던 나는 시험을 망치고 들어와서 밤을 꼬박 새워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재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기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전공을 택하게 되었고, 하루라도 빨리 '수험생'이라는 것을 떠나고 싶었기에 얼른 대학을 갔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자유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사랑/결혼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사회라는 것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고민하며 지냈던 대학시절. 앙망하며 올려다봐야만 했던 대학의 낭만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이 밤을 지새우던 고민덩어리였던 때. 지금은 이런 얘기하는 것조차 진부해졌으리 만치 현재의 대학이라는 곳은 더욱 경쟁이 치열한 바깥세상으로의 도약대가 되고 있는 듯하다.

당시 고민했던 것 중의 하나. 인생이라는 길에서 우리는 자아성취를 해야 한다는 명제.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자아성취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 전체 중 0.1%도 안 될 것이다. 굉장한 행운아다. 언제 자아를 찾을 겨를이 있으며 자아를 발견해본들 객관적으로 구체화해 나갈 재간이 없다"는 것.

십수 년이 흘렀다. 시대가 많이 변하여 공부/학벌/재산/지위 등이 삶의 최우선 요소가 아니며 내가 관심 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할 수 있으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과거보다는 훨씬 좋아진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시 또 똑같은 질문을 해 본다면 가히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나에게 아주 크게 와 닿았던 2명의 직업 종사자가 있다. 한 사람은 어느 이탈리아 영화 속의 우체국 직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해외 공연시 시애틀 공연 후의 무대세트를 캐나다 캘거리로 운반하던 대형트럭 운전사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여유 있게 말이다.

천천히, 꼼꼼히 자신의 일에 임하면서 필요한 대화들을 친절하게 모두 끝내고 난 뒤,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전을 할 때 노래를 부르던 그 모습. 그 단순한 모습. 그 단순한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비록 남들보다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을지언정 감사하는 마음과 열심, 성실만 있으면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비록 기성세대들은 이미 지난 과거이다 하더라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보통사람들이 그냥 보통으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 말이다.

김성열(수성아트피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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