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11월, 바다는 섬을 집어삼킬 듯

▲ 19일 오전 거센 폭풍우로 3일째 뱃길이 끊긴 독도에는 함박눈이 쏟아졌다. 계곡 군데군데 눈이 쌓인 동도 전경.
▲ 19일 오전 거센 폭풍우로 3일째 뱃길이 끊긴 독도에는 함박눈이 쏟아졌다. 계곡 군데군데 눈이 쌓인 동도 전경.
▲ 며칠 전 동도 접안장에 착륙한 헬기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접안장을 넘나드는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 며칠 전 동도 접안장에 착륙한 헬기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접안장을 넘나드는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바다의 성이 여성임을 이제 알았다. 바다가 그렇게 변덕스러운지 전에는 몰랐다.

며칠 전까지 낮에 방에 있으면 더워서 창문을 열어뒀는데 가을도 없이 갑자기 겨울이 돼버렸다. 나흘 전부터 물결이 높아졌는데 아마 파랑주의보가 내려진 것 같다. 온 바다가 뒤집어져 하얗게 눈밭처럼 변해버렸다. 수면은 물먼지가 일어 안개가 끼듯 흐릿하다. 하늘은 새파랗게 얼었다가, 먹장구름으로 덮였다가, 금세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동도와 서도 중간은 북동쪽과 남서쪽에서 밀려온 파도가 맞부딪쳐 연방 산더미 같은 물기둥이 솟구친다. 물기둥에서 흩뿌려지는 물보라는 독도 천지를 뒤덮어 종일 이슬비가 되어 내린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냈더니 아예 수중촬영하는 꼴이다.

며칠 전에는 경찰대학 관계자들이 헬기편으로 동도를 방문했다. 이들은 헬기 넉 대에 나눠 타고 왔다. 그런데 독도에서 헬기가 내릴 곳은 두 곳뿐이다. 독도경비대 헬기장에 한 대, 접안장에 한 대 정도 착륙할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러 대의 헬기가 오면 일단 탑승자를 내리고 울릉도나 주변 해경 경비정에 돌아가 대기했다가 돌아갈 때 다시 온다.

이번에도 두 대만 독도에 대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중 접안장에 착륙한 헬기가 고장이 났다. 헬기가 이륙을 못하고 있는 사이 바다가 거칠어져 결국 접안장 배 묶는 곳에 헬기를 밧줄로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성난 바다는 누그러질 기미 없이 연이틀 동안 동도 접안장에 매여 있는 헬기 몸체를 할퀴며 위협했다. 속절없이 배가 되어버린 헬기가 행여나 떠내려갈까봐 건너다보는 서도 사람들은 밤새 마음을 졸였다.

20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얇은 셔츠를 입고 나섰더니 이가 딱딱 마주친다. 물골 계단공사 하는 사람들도 추위에 못 이겨 응달인 물골 쪽 공사를 미뤄두고 어업인숙소 쪽으로 철수해왔다. 점심 때가 되어 밥 당번 동료가 더운 국과 밥, 찬거리를 챙겨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지고 배달을 나섰다. 절벽 같은 물골 계단을 용케도 오른다 했더니 30분도 채 안 되어 흠씬 젖어서 돌아 내려왔다. 물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내려서려는 찰나 갑자기 뒤에서 불어온 돌풍이 지고 있는 밥 바구니를 거꾸로 엎어버려 국과 밥을 온통 뒤집어쓴 것.

골을 타고 올라온 바람은 사람도 날린다. 지난해 동도에서는 겨울풍경 촬영을 온 사진작가 김종권씨(섬진강 문화학교 교장)가 바람에 날려 다쳤다. 쇠기둥에 머리를 박아 사흘 만에 어렵사리 이송되어 23바늘을 꿰맸다. 그래서 그는 흉터 때문에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다고 했다.

바다의 변덕은 그뿐이 아니다. 19일 아침은 어두침침해져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더니 금세 함박눈으로 변했다. 지척을 가늠할 수 없는 함박눈이 날리더니 연이어 또 콩알만한 싸락눈이 쏟아져 내린다. 건너다보이는 동도는 순식간에 눈 덮인 겨울풍경을 만들어냈다. 바다는 저 혼자 한 시간쯤 변덕을 부리더니 어느새 구름을 걷어내고 새파란 하늘을 드러냈다.

지금쯤 뭍의 사람들은 김장 준비를 할 터이다. 그러나 이곳 독도, 특히 서도는 겨우살이 준비를 하지 않는다. 다만 12월부터 떠날 준비를 한다. 김성도 이장 부부는 울릉도로 나가 겨울을 난다. 내년 3월이 올 때까지 어업인숙소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동면에 들어간다. 서도는 침묵의 시간이다.

얼마 전 폭풍우를 뚫고 독도로 들어온 경비정 관계자가 말했다. 울릉도서 오는 동안 일본 순시선들이 다가와 얼쩡거려 신경이 곤두섰다고. 독도에서는 아직 일본 순시선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파도가 높고 뱃길이 끊기는 겨울로 접어들면 그들은 독도 근해에 나타나 우리 쪽 신경을 건드린다고 한다. 우리가 '바다의 변덕'을 믿고 동면하는 시간, 그 순간에도 일본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 '먹잇감'을 채려고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7월 그렇게 분노했던 일본 역사교과서 해설서 파문을 벌써 잊었는가? 모두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킬 일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