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김치 먹어보기

예로부터 우리 선조는 오복 중 하나로 치아 건강을 꼽았다. 그만큼 치아 건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치아가 부실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요즘도 적지 않게 있다. 치과 진료를 하다 보면 치아가 없어 틀니나 보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주 받는 질문이 '장 원장 이가 적은 것 아니가?' '선생님 몇 개나 해야 하나요?' '틀니 해도 김치 물 수(먹을 수) 있나' 등으로 다양하다.

치아가 하나도 없어 완전 틀니를 한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옆집 할매는 틀니하고도 김치도 묵꼬, 고기도 잘 묵꼬 하는데 나는 왜 김치쪼가리(조각)도 마음대로 잘 물 수 없노' 하면서 푸념을 한다. 이런 경우 나는 '아직 처음이라 불편하시지만 약간 조정하고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 사람마다 얼굴 모양이 다르듯 틀니도 똑같이 만들어 드릴 수는 없다'고 달래며 설명을 한다. 가끔 책이나 프로그램에서 노부부가 식당에서 밥을 시켜놓고 먼저 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난 뒤 자신의 틀니를 깨끗이 씻어 할아버지에게 줘 식사를 마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아름다운 이야기임에는 틀림 없지만 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각 개인마다 입 모양이 다르고 잇몸 상태가 다양해 서로 틀니를 공유해 사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몇 개의 치아가 있어야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환자들이 자주하는 질문이지만 치과의사인 나도 항상 대답하기 곤란해 주로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하고 대답을 했다. 최근 재미난 연구가 있는데 전국 60세 이상의 노인 600명을 대상으로 치아 수와 음식물 저작(씹는) 능력을 조사한 결과 남아 있는 치아가 3개 정도이면 두부를 먹을 수 있고 쌀밥을 먹으려면 4개, 삶은 달걀은 8개, 흔히 먹는 배추김치는 12개, 고기를 먹으려면 최소 18개의 치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음식물을 먹는 것은 아래와 위 치아가 서로 부딪쳐야 가능하기 때문에 윗니가 아무리 많아도 만약 아래 치아는 없다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연구 결과와 현실을 잘 조합해 생각해 보면 아래, 위로 서로 맞물리는 치아가 2~4개 정도면 두부와 밥을 먹을 수 있고 김치를 먹으려면 5, 6개, 고기를 먹으려면 9, 10개 정도의 맞물리는 치아가 필요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당당하게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누가 조사했는데 김치 먹으려면 아래, 위로 맞물리는 치아가 5개는 있어야 한데요. 할머니는 하나도 없으니 김치도 조각조각 내어 천천히 씹어 드세요'라고. 그러면 할머니는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하고 불편하면 조정하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치과 의자에서 내려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옆집 할매는 갈비도 뜯는데….'

장성용(민들레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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