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람을 느끼다

그 선배, 얼른 보면 사는 모습이 너무 당당해 거북스러웠다. 아니, 어느 장소 어느 시각에 만나도 핫핫핫 하고 웃는 모습이 여성스럽지 못해 부담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십년쯤 지나 모임에 나온 선배는 국립대 교수였다. 여전했다. 당당한 모습도 똑같고, 스스럼없는 표정도 변한 게 없다. 안정된 사회생활과 결혼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서 여유로움이 좀 더 생긴 정도가 변화였다. 참 복도 많은 사람이지. 모임 참석자들의 시선은 선망과 함께 약간의 질투가 묻어난다.

그런데 다시 몇 년이 지나 이웃 동네로 이사 온 그 선배, 학교를 그만뒀단다. 철밥통 같은 국립대 교수를 왜 그만뒀을까? 가까운 지인들 대부분의 추측은 뭔가 잘못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러나 그 선배 대답은 너무도 천연덕스럽다. 아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잘 키우고 싶단다. 남편이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서민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선택치고는 뜻밖이었다.

당연히 주위의 시선은 자식들을 얼마나 잘 키우는지를 관찰하는 문제였다. 가까이서 지켜본 선배의 자식들은 지극히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다른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일류가 아닌, 이류 정도의 대학에 갔다.

그런 자식들을 두고도 선배는 늘 그랬다.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힘드냐며 애틋해 했다. 또 자식들이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개근상이라도 받아오면 온 얼굴이 함박웃음으로 가득하다. 보다 못한 지인이 선배에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선배 대답이 걸작이다. 봉사하는 사람이 무슨 후회가 있겠느냐며 동그란 눈을 크게 뜬다.

자식 키우는 것을 봉사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그 선배. 결과가 놀랍다. 평범하게 자란 자식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최상의 학벌을 자랑하는 이웃 자식들보다 훨씬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닌가. 더 좋은 직장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는 것은 물론 직장 내에서도 신망을 가장 많이 받는 구성원으로 지낸다니. 이유는 간단하다. 자식들도 엄마처럼 직장일조차도 봉사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단다. 부정적인 언행을 삼가는 엄마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표정이 늘 밝고 긍정적이다.

요즘은 자신이 귀속한 종교의 봉사단체 회원으로 바쁜 선배에게 물었다.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남편도 실직하고, 젊을 때 돈 좀 벌어두었으면 하는 후회가 들지 않느냐고. 역시 그 선배 대답은 "적게 벌면 적게 쓰고 살면 되지 뭐!"라며 웃는 것이다.

오늘도 그 선배의 '핫!핫!핫!'하는 웃음소리가 내 어깨에 와서 앉을 때, 가장 개운한 청량제다. 참 개운하다.

서동훈 대구미래대 영상광고기획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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