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벌금 못낸 생계형 범죄자 노역장行 줄까

40대 실직 가장인 A씨는 얼마전 술에 취해 행인을 때린 죄로 3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술로 시름을 달래다 홧김에 멱살을 잡고 시비를 벌인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A씨는 벌금을 내는 대신 구치소에서 몸으로 때우고 나왔다. 30만원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먹고 살기 어려워 사고를 치고 교도소 간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며 "하지만 가족이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데 그 돈을 구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앞으로 300만원 이하의 벌금 미납자는 노역 대신 사회봉사로 대체하고, 오랫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수배됐더라도 일부만 내면 수배조치가 해제된다. 각종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대폭 완화된다. 이같은 내용은 16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민생·치안 대책'에 따른 것으로 경기침체 속에 고통을 겪는 서민들의 생활고를 줄여주려는 취지다. 이로 인해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끌려가는 '생계 곤란자'들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무무 측은 "벌금을 못내 노역으로 대신하는 사람이 올초보다 3천여명이 늘어 3만3천여명에 이른다"며 "노역으로 생계가 중단되는 상황을 막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구치소에 따르면 16일 현재 970여명이 수형중인데 이중 70여명이 노역중이다.

대구 구치소 관계자는 "20~30만원 벌금을 못내 1일 5만원짜리 노역을 사는 사람이 많다"며 "이중에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노숙자, 홧김에 시비를 벌인 실직자,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로 적발된 생계형 운전자 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구치소 측은 IMF때도 그러했지만 불황의 골이 깊어갈수록 벌금 대신 몸으로 떼우려는 노역자들이 계속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법원에서는 벌금 대신 징역형을 원하는 피고인이 늘고 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경미한 범죄의 경우 피고인들이 벌금 낼 능력이 없다며 낙인이 남더라도 '집행유예'을 선고해달라고 재판장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법무부는 벌금을 완납할 수 없을 정도로 생계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벌금을 나눠내거나 납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하고 노역장 유치도 지양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300만원 이하의 벌금 미납자에 대해 노역 대신 사회봉사로 대체할 수 있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대폭 경감된다. 생계형 범죄 경우 대폭 감형해 구형하고 기소유예도 확대할 방침이다. 생계형 범죄는 ▷노점상이 장사를 위해 도로를 점유하는 경우 ▷식당 주인이 영업자 준수사항을 위반하는 경우 ▷장사하면서 건물 구조를 변경시키는 경우 등 일반인들이 생업(生業)에 종사하다 벌어지는 행정법규 위반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부과하는 과태료는 벌금과는 달리 경감 대상이 아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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