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李-朴의 선택

李, 政敵 안은 링컨 리더십 배워야/朴, 계파 정리 땐 더 우뚝해 보일

외신에 비치는 미 대통령 당선인 오바마는 링컨 평전을 옆구리에 끼고 산다. 링컨을 모델 삼아 뭐든 따라할 모양이다. 당선 즉시 링컨 연설문을 인용하더니 취임식에도 링컨처럼 열차를 타고 간다고 한다. 힐러리 국무장관 카드는 더더욱 링컨을 판 박았다. 링컨 역시 당내 후보 경선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던 인물을 선뜻 국무장관에 임명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적이 예뻐서 자리에 앉혔을까. 무턱대고 속이 좋아 통큰 리더십을 보였을까.

까뒤집어 보면 거기에는 영리한 계산이 도사려 있다. 링컨은 현실주의자였다. 자신이 처한 정치적 한계를 정확하게 꿰뚫은 사람이었다. 정치적 자산이라곤 이름 없이 지낸 한 번의 하원의원과 두 번 떨어진 상원의원 출마 경력이 전부였던 링컨이다. 이런 처지에서 전국적으로 명성이 쟁쟁한 라이벌들은 버리기 아까운 인연이었던 것이다. 링컨은 경선 라이벌 3명뿐 아니라 공화당 내 3개 파벌을 모두 아우르는 내각을 구성했다. 말하자면 내각의 라이벌 기용은 결국 변방 출신의 비주류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현실 정치를 안 것이다.

오바마 역시 바람선거로 거머쥔 권력의 취약성을 재빨리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인단 확보에서 더블스코어 이상 이겼지만 전국적 득표율로는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반대했다. 백인이 안겨준 승리였어도 그는 어쩔 수 없는 비주류 출신(백인 75% 흑인 13%)이다. 정치적 경력은 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각 한 번이 전부다. 이런 입장에서 앞날의 우군으로 힐러리만한 인물이 없다고 주목한 것이다. 정적이고 뭐고 간에 자기 살길을 우선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학습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 문제를 다루는 걸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압승을 거뒀다 해도 실제는 유권자 10명 중 3명만이 지지한 형세로 출발했다. 그전에 있은 한나라당 후보 경선도 박 전 대표에게 바짝 쫓긴 승부였다. 정치 경험이 깊지 못한 처지에서 취약한 당내 기반을 감안해야 했다. 아무리 승자 독식의 권좌에 올랐지만 현실을 직시했어야 하는 것이다.

정권을 잡자 박 전 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의했다고 하나 한두 번 떠본 인상을 주었을 뿐이다. 박 전 대표를 안으라는 것은 누구 좋은 일 시키자는 게 아니다. 이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다. 링컨은 전국적 거물인 라이벌을 국무장관에 기용하면 자신이 가려질 위험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길게 봐서 그를 써먹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나서 두 번 세 번 빌다시피 입각을 간청했다.

돌아가는 본새를 보면 대통령은 똑같은 반열에서 친이 친박 하며 오르내리는 게 못마땅한 눈치고, 박 전 대표는 싸늘하게 따로 도는 걸로 존재를 시위하는 형국이다. 서로 아쉬울 것 없다며 먼저 굽히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다. 이렇게 서로 뻗대는 상황에서는 손 내미는 쪽이 크게 보이는 법이다. 이 대통령은 딴 욕심 가질 필요 없다. 대통령 그만둔 뒤 계속 정치 할 것도 아닐 것이고 욕먹어 가며 챙겨야 할 만큼 사람 빚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대통령 노릇 잘하는 것밖에 신경 쓸 게 없다. 그게 남는 장사다. 측근에 쏠려 복잡하게 계산하다 보면 세월만 잡아먹고 나라는 산으로 올라갈지 모른다.

박 전 대표도 계파를 정리하는 게 옳다. 미래를 향한 운신에는 그게 더 유리할 것이다. 굳이 세력 과시를 하지 않아도 독자적인 대중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지난번 총선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계파는 불을 좇아 몰리는 부나비 떼와 다름없는 것이다. 정치적 힘이 빠지면 언제든 돌아설 무리들이다. 카리스마가 남달랐던 YS와 DJ도 씁쓸하게 맛본 사실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계파에 의지할 것도, 그들만을 위해 총대를 멜 것도 없다. 나라가 어려운 때에 친박이나 챙기는 모습은 왜소하고 앞길에 손해다. 완고한 반박(反朴)을 유발하는 어리석음을 그만두어야 기회는 더 넓어진다. 단언컨대 친박을 해체하는 그 순간 박 전 대표는 지금보다 우뚝해 보일 것이다.

머지않아 개각이 있다고 한다. 이번이 둘 다에게 기회다. 때를 놓치면 후회의 시간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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