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신라의 궁성으로 알려진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북편에서 2006년 발굴조사된 통일신라시대 해자(垓子) 1기(월성 4호)에 대한 정비를 마무리하고 그 모습을 공개했다.
해자란 옛 시기 토성(土城)이나 석성(石城)의 외부 둘레를 판 후 그 안에 물을 가두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기본적인 방어시설로, 이날 정비된 월성의 북편지역 해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습지가 형성되어 자연 해자의 기능을 하여 왔던 것으로 추정돼 왔다.
월성 주변에는 이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이곳의 습지 등을 재정비 한 것으로 보이는 10여개의 석축해자 흔적이 그동안 발굴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월성 4호 해자는 동서의 길이가 약 80m이고 남북의 너비는 약 40m에 달하는 장타원형 모양의 큰 규모로 해자 전체의 4분의 3 정도가 남아 있으나 많은 석축이 무너지고 유실된 상태여서 수차례 관계전문가의 자문과 검토를 거쳐 2년 동안 보수작업을 벌여왔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4호 해자는 7세기 후반 무렵 사람 머리 크기의 큰 강돌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쌓은 1차 해자와 8세기 전반경 잘 다듬은 장방형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2차 해자, 그리고 강돌과 다듬은 돌을 혼용하여 축조한 마지막 3차 해자 등 3차례 걸쳐 개축된 흔적이 확인됐다고 밝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자의 축조 방법과 기능 또한 점차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고 했다.
또 해자의 동쪽 석축에는 물을 담기 위한 입수구(入水溝)가, 그리고 서쪽 석축에는 물을 빼는 출수구(出水溝)가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전체 해자가 위치한 지형 자체가 동편에서 서편으로 가면서 낮아지고 있는 형식으로, 동쪽 해자의 물이 서쪽 해자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이 물이 그와 연접한 서쪽 해자로 계속 흐르게 하는 자연스런 치수를 고려했다는 것. 특히 구조나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후기로 가면서 해자는 본래의 방어적인 기능보다는 조경용의 기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경주·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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